그 때의 내 나이가 쉰이었다. 어느새 피아노 연습은 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어 있었다. 현실 도피라 해도 좋고, 어리석은 충동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내 몸이 피아노를 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출근 전 20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낸 날은 뇌의 화학반응이 달라진 것만 같은 강력한 느낌을 받곤 했다.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내 뇌가 '안정'된 것처럼 느껴졌고, 앞으로 열두 시간 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모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의 원천이 정확히는 화학 반응이 아니라 신경회로망의 재편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19쪽)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 중에서(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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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삶'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업'에 치열히 몰두하면서도, 동시에 음악이나 미술 등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통해 '균형'을 잡아주며 지낼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부럽고 벤치마킹할 만한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앨런 러스브리저. 영국의 '가디언' 편집국장을 20년 동안 역임한 유명한 언론인입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니,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배운 연주자는 아니고, 취미로 클리라넷과 피아노를 익힌 아마추어 연주자이지요.
세계적인 신문사의 편집국장인 그가 그 바쁜 일상 속에서도, 특히 가디언이 위키리크스 외교 문건 보도, 에드워드 스노든 미국 국가안보국 도감청 폭로 등 세계적인 특종을 보도하던 고된 시기에도 매일 출근 전 20분 피아노 앞에 앉아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작품 23'을 연주했다는 건 놀랍습니다.
앨런은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자신의 뇌가 '안정'된 것처럼 느껴졌고, 이후 열두 시간 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모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통해 바쁜 삶의 균형을 잡고 지낸 셈입니다.
 
사실 외국에는 자신의 일을 치열하게 하면서도 평소에 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도 준 프로급 피아노 연주자로 잘 알려져 있지요. 콘돌리자도 본업과 관련해 피아노가 주는 효용을 '릴리스 포인트'라고 표현했더군요. 피아노 연주가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얘깁니다.
 
"브람스의 악보와 씨름하다 보면 마치 다른 세계로 훌쩍 날아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른 문제는 생각조차 나지 않아요. 반면 다른 취미는 몸만 거기 매달려 있을 뿐 마음은 완전히 딴 데 팔리는 경우가 많아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음악에 완전히 몰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번다한 생각이 침범할 여지가 없어요... 연주를 마치고 나면 몸은 고될지 모르지만 정신만큼은 가뿐해요."
 
앨런에게도, 콘돌리자에게도 피아노 연주는 본업의 효율을 높이고 정신 건강을 온전히 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 겁니다.
 
"시간이 없다고? 너무 늦었다고? 다시, 피아노다."
 
앨런의 조언처럼, 우리 경제노트 가족들도 '나의 업'을 위해서, 나아가 나의 '온전한 삶'을 위해 좋은 취미를 하나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