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요한복음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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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ate24-12-09 09:19 조회 Read1,298회 댓글 Reply0건관련링크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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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찾던 것과 예수님이 주시려고 했던 것은 판이하였습니다. 그림자는 비슷했지만, 실체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치 마네킹과 실제 사람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은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찾았습니다. 그러한 만나를 주시는 분이 자신들의 왕이요 메시야라고 생각했으며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면 옛날 모세가 자기 조상들을 먹여 살렸던 것처럼 만나를 만들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만나는 분명 하나님의 기적이었지만 그 기적을 40년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먹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기적적으로 만나를 주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으며 결국 다 광야에서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했다고 다 영생을 누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생은 만나를 먹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영생하게 하는 양식을 통해 오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5천 명에게 떡을 먹이셨지만 그 떡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떡을 찾아 계속 예수님을 좇아갔으며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할 것(6:27)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영생하게 하는 양식을 주러 오신 것이지 밥 몇 끼 잘 먹게 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것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인데 사람들은 썩는 없어지는 양식을 위하여 쫓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 사는지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 사는지.
영생하는 양식은 인자가 주신다고 했는데 바로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요 생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 피를 마시는 삶이 바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사는 삶인 것입니다. 요한은 태초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요(1:1)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요(1:18) 이 말씀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삶이 바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사는 삶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는데 묵상의 뜻은 소가 되새김질한다고 할 때의 되새김질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심사숙고 되새기며 그 말씀 속의 영양분(진리)을 흡수할 때 그것이 삶의 양식이 되며 필요한 모든 영양소와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먹느냐가 내가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며 결국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가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먹고 소화(되새김질)할 때 이 말씀이 나의 삶이 되고 에너지가 되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가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갈2:20).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던 예수님(요1:14)을 먹고 사는 사람은 그 말씀이 그의 육신이 될 것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없습니까? 달라고 악쓰며 기도할 일이 아니라 말씀을 먹고 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만나는 분명 하나님의 기적이었지만 그 기적을 40년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먹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기적적으로 만나를 주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으며 결국 다 광야에서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했다고 다 영생을 누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생은 만나를 먹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영생하게 하는 양식을 통해 오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5천 명에게 떡을 먹이셨지만 그 떡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떡을 찾아 계속 예수님을 좇아갔으며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할 것(6:27)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영생하게 하는 양식을 주러 오신 것이지 밥 몇 끼 잘 먹게 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것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인데 사람들은 썩는 없어지는 양식을 위하여 쫓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 사는지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 사는지.
영생하는 양식은 인자가 주신다고 했는데 바로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요 생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 피를 마시는 삶이 바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사는 삶인 것입니다. 요한은 태초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요(1:1)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요(1:18) 이 말씀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삶이 바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사는 삶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는데 묵상의 뜻은 소가 되새김질한다고 할 때의 되새김질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심사숙고 되새기며 그 말씀 속의 영양분(진리)을 흡수할 때 그것이 삶의 양식이 되며 필요한 모든 영양소와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먹느냐가 내가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며 결국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가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먹고 소화(되새김질)할 때 이 말씀이 나의 삶이 되고 에너지가 되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가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갈2:20).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던 예수님(요1:14)을 먹고 사는 사람은 그 말씀이 그의 육신이 될 것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없습니까? 달라고 악쓰며 기도할 일이 아니라 말씀을 먹고 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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