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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증 여인 (누가복음 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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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ate25-03-06 14:58 조회 Read1,135회 댓글 Reply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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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장에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지난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입니다. 많은 병중에도 하필이면 혈루증. 성경은 그것을 죄로(주로 음란죄) 인한 병으로 간주하고 그 병이 있는 여인들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올 수 없었으며 피치못해 나왔을 때는 “더럽다(unclean), 더럽다”를 스스로 외쳐야만하는 아주 비참한 병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원인도 모르고 치료도 없었던 병이었습니다. 그렇게 12년간 병과 주변 사람들에게시달리며,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가진 것을 다 썼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병은 점점 더 악화된 것이었습니다(눅 8:43).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그녀의 행동은 처음에는 단순한 요행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국 참된 믿음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누가는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녀의 행동이 어떻게 단순한 기대에서 참된 믿음으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찾아야합니다.

1. 요행을 바랐던 여인의 첫 번째 마음
이 여인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능력을 완전히 신뢰했다기보다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싶었던 마음에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을 향한 ”바람“입니다. 믿음이 있어서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 속에서의 간절한 바람은 하나님을 아는 믿음으로 연결하는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옷자락만 살짝 스쳐도 될 거야. 혹시나 나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바람.

즉, 여인은 예수님과의 어떠한 만남이나 관계 없이, 사람들 틈에 섞여 몰래 치유만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절박했기에 어찌하든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박함이 믿음은 아닙니다.

이여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고, 그 순간 즉시 혈루증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눅 8:44). 놀랍고 기뻤지만 조용히 현장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순간 예수님께서 갑자기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자신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눅 8:45)

이 말을 듣는 순간 여인은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책망하시면 어떡하지?‘
‘나는 부정한 사람이니,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안 돼.‘
하지만 그녀는 결국 사람들 앞에서 나와 지난 12년간의 고통스런 투병에 대해 얘기하였으며 결국 드디어 치유되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눅 8:47).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다른 아무 설명 없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눅 8:48)

“딸아”라고 부르시며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며 존귀히 여기시는 예수님. 아무도 지금까지 자신을 딸처럼 귀하게 대해준 사람이 없었는데 예수님이 자신을 딸로 불러준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병이 나은 것만해도, 게다가 딸이라고 불러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자신에게 있는지도 몰랐던 믿음으로 구원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평안히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보시고 이 여인에게 믿음이 있었고 구원을 받았음을 알려 주셨을까요?

이 여인의 믿음은 병고침을 바라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이 아닙니다. 옷자락을 잡은 것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듯이 잡은 것일뿐 믿음은 아닙니다. 만일 믿은 것이 있었다면 예수님 ”옷자락“의 효능이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은 옷자락일뿐 아무런 능력이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여인이 옷자락을 믿기보다는 예수님 자신을 믿기를 원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여인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예수님(하나님)의 마음(compassion)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멈추시고 그녀를 일대일 인격적인 만남으로 초청하신(부르신) 것이었습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이제 이 여인은 선택의 길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냥 모르는척하고 가든지 예수님 앞으로 나오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그냥 가도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치유한 예수님이 도대체 어떠한 분인지도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혹 다시 재발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자신이 드러나는 것도 싫었습니다.  분명 정죄, 비난, 원망, 저주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찾는 예수님의 음성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동안의 고통, 고난, 고생, 고민 등등을 다 털어 놓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보신 믿음이었습니다. 비록 나는 나의 병(죄)으로 인해 죽어 마땅하지만,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히11:6).

그리고 이 믿음은 이여인을 몹쓸 병뿐 아니라 몹쓸 편견, 몹쓸 종교, 그녀를 이용해 먹는 몹쓸 인간들로부터 구원하였으며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의 죄의식, 열등감, 절망, 원망, 자포자기로부터 구원한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영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하시던 모든 일을 멈추시고 이여인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와 회복을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그녀가 평안히 갈(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기적의 체험은 세월과 함께 의심 속으로 사라지지만 인격적인 만남은 세월이 갈수록 영원한 힘과 소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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