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과 십자가 (누가복음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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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ate25-03-07 16:49 조회 Read1,165회 댓글 Reply0건관련링크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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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제자를 부르시며 “나를 따르라”(마 4:19, 눅 9:23)고 말씀하셨고, 또한 “영생”(요 3:16, 요 17:3)에 대해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별개가 아니라 긴밀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사는 것입니다. 영생은 단순히 죽은 후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생” 하면 단순히 죽은 후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생을 시간적인 연속이 아니라, 그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냈느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성경은 이러한 삶을 하나님과의 동행이라고 표현 합니다. 구약에서는 에녹이 그 예였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즉,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간혹 길을 잘못 들기도 하겠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먼저 자기 자신을 부인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 한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거나 멸시하거나 낮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 운동 하도록 먼저 살펴 봐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먼저 앞세운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하면 예수님의 끔찍한 십자가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러한 끔찍한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여기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 각자가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처럼 고난 받고 희생해야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며는 사는 영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다 투자하는(올인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치뤄야 하는 값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치뤄야 하는 값이 없는 삶이라면 그 삶은 살가치가 없는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예수님을 따르는 삶 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복종과 순종의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따라 가는 차원이 높은 삶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의 방법대로 예수님의 일을 하며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값진 삶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영생을 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신앙이 단순한 종교적 행위로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 교회는 다니지만, 삶의 중심이 여전히 내 뜻과 세상의 방식은 아닌가요?
• 예수님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예수님과의 사이가 그리 친하지 않지는 않은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사는 것입니다. 영생은 단순히 죽은 후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생” 하면 단순히 죽은 후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생을 시간적인 연속이 아니라, 그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냈느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성경은 이러한 삶을 하나님과의 동행이라고 표현 합니다. 구약에서는 에녹이 그 예였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즉,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간혹 길을 잘못 들기도 하겠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먼저 자기 자신을 부인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 한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거나 멸시하거나 낮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 운동 하도록 먼저 살펴 봐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먼저 앞세운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하면 예수님의 끔찍한 십자가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러한 끔찍한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여기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 각자가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처럼 고난 받고 희생해야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며는 사는 영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다 투자하는(올인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치뤄야 하는 값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치뤄야 하는 값이 없는 삶이라면 그 삶은 살가치가 없는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예수님을 따르는 삶 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복종과 순종의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따라 가는 차원이 높은 삶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의 방법대로 예수님의 일을 하며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값진 삶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영생을 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신앙이 단순한 종교적 행위로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 교회는 다니지만, 삶의 중심이 여전히 내 뜻과 세상의 방식은 아닌가요?
• 예수님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예수님과의 사이가 그리 친하지 않지는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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