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달라고 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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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11-14 10:01 조회 Read1,214회 댓글 Reply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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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일 네게 물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한 여인의 인생이 불쌍하여 그 인생에 참 의미와 기쁨을 되살리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고 피곤을 무릅쓰고 오신 예수님. 이 여인을 만나자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당장 기적을 행하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시지 않고 길가는 거지처럼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물을 생기게 하실 수 없었습니까? 예수님이 구차하게 구걸해야 하는 분입니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이 사람을 도와주시기 위해 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위치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높은 위치에서 누구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높은 위치에 앉아서 도와주려고 할 때 상대방의 자존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설령 도와주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도움이 아닌 동정밖에는 되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도움은 가치있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 옆에서, 아니 그 사람 밑에서 그로하여금 자신의 참 위치와 가치를 찾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돕고자 이 여인보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그의 도움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장 연약하고 가장 미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도 모르고 이 여인은 퉁명스럽게 거절합니다. 어찌 유대인 남자인 당신이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저 의아해서 한 질문이 아닌 그 당시의 차별 대우를 비꼬면서 쏘아붙인 말인 것입니다. 속에 엉켜 있던 아픔, 슬픔, 억울함, 분노 등등이 노출된 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잘난 척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물 달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치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실상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자손이라고 낙인을 찍어 놓고 그들을 비난, 비냥하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으니 어찌 좋은 말이 나왔겠습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여인의 핀잔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계속 대화를 끌어 나갑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구했을 것이라고. 바로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누가 줄 수 있는 것인지를 암시하며 이 여인의 관심을 이끌어 갔던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참고 고생하십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한 무지 무력한 죄인을 구하러 이 삭막한 땅에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한 여인의 인생이 불쌍하여 그 인생에 참 의미와 기쁨을 되살리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고 피곤을 무릅쓰고 오신 예수님. 이 여인을 만나자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당장 기적을 행하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시지 않고 길가는 거지처럼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물을 생기게 하실 수 없었습니까? 예수님이 구차하게 구걸해야 하는 분입니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이 사람을 도와주시기 위해 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위치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높은 위치에서 누구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높은 위치에 앉아서 도와주려고 할 때 상대방의 자존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설령 도와주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도움이 아닌 동정밖에는 되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도움은 가치있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 옆에서, 아니 그 사람 밑에서 그로하여금 자신의 참 위치와 가치를 찾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돕고자 이 여인보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그의 도움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장 연약하고 가장 미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도 모르고 이 여인은 퉁명스럽게 거절합니다. 어찌 유대인 남자인 당신이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저 의아해서 한 질문이 아닌 그 당시의 차별 대우를 비꼬면서 쏘아붙인 말인 것입니다. 속에 엉켜 있던 아픔, 슬픔, 억울함, 분노 등등이 노출된 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잘난 척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물 달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치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실상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자손이라고 낙인을 찍어 놓고 그들을 비난, 비냥하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으니 어찌 좋은 말이 나왔겠습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여인의 핀잔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계속 대화를 끌어 나갑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구했을 것이라고. 바로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누가 줄 수 있는 것인지를 암시하며 이 여인의 관심을 이끌어 갔던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참고 고생하십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한 무지 무력한 죄인을 구하러 이 삭막한 땅에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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