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의 기적 (요한복음 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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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01-23 10:14 조회 Read1,213회 댓글 Reply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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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하나만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온 소경의 눈을 고쳐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왜 굳이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고, 그 진흙을 눈에 바른 후 실로암으로 보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셨을까요? 단지 말씀으로 고쳐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 좀 지저분하기도 하고… 예수님의 침에 특별한 성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진흙에 어떤 치유 효과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방법만 놓고 보면, 침도, 진흙도, 실로암도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을 “시키신“ 예수님입니다. 진흙이나 침, 심지어 실로암조차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는 것이지, 어떤 ‘방법’이나 ‘사물’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흙도, 침도, 소경의 순종도 그 자체로는 소경을 눈 뜨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능력과 소경을 향한 은혜가 그를 고쳤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받아들인 소경의 순종이 그에게 눈을 뜨는 체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이 사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소경이 어떻게 눈을 떴는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눈을 떠서 무엇을 보게 되었느냐입니다. 만약 눈을 떠서 단지 깡통 대신 은행 통장을, 구걸 대신 비즈니스를 바라보며 산다면, 눈 뜬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눈뜬 삶의 참된 목적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한 살맛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눈을 떠서도 여전히 옛날과 같은 목적으로 산다면, 눈 뜬 기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눈뜸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나를 향한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 뜻과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참 괴상하고 귀찮은 방법처럼 보입니다. 왜 굳이 이렇게 하셨을까요? 차라리 돈을 내라거나, 평생 섬기라거나, 백일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면 사람들이 더 쉽게 납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무언가를 얻는다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리는 다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모든 것을 이루게 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중요한 것은 소경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소경이 한 일이라야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까지 걸어간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그가 눈을 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실로암에 가서 씻은 것이 아니라 그 한 것이 보잘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뜨게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인 것입니다.
소경이 눈을 뜨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순종에 앞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순종은 결국 이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는 발걸음인 것이지요. 소경이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으로 가는 과정은 어쩌면 창피하고 어리석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진흙이나 실로암에 눈을 뜨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말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믿고 순종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을 명령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내가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면 낫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방법에 의존하는 것일 뿐입니다. 참된 믿음은 나에게 명령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지금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진흙과 물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진흙과 물을 사용하신 예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셨고, 나를 향한 사랑으로 나를 고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믿음이 소경으로 하여금 창피함과 의심을 넘어 순종하게 했고, 결국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하게 했던 것입니다. 진흙이나 물 같은 도구나 방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 속에서 그분의 능력과 사랑을 신뢰하며 순종한 소경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단순히 더 나은 환경이나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 자신을 보게 하시고, 그 안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눈을 떠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고, 그분과 동행하며 흥미진진한 “영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방법만 놓고 보면, 침도, 진흙도, 실로암도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을 “시키신“ 예수님입니다. 진흙이나 침, 심지어 실로암조차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는 것이지, 어떤 ‘방법’이나 ‘사물’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흙도, 침도, 소경의 순종도 그 자체로는 소경을 눈 뜨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능력과 소경을 향한 은혜가 그를 고쳤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받아들인 소경의 순종이 그에게 눈을 뜨는 체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이 사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소경이 어떻게 눈을 떴는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눈을 떠서 무엇을 보게 되었느냐입니다. 만약 눈을 떠서 단지 깡통 대신 은행 통장을, 구걸 대신 비즈니스를 바라보며 산다면, 눈 뜬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눈뜬 삶의 참된 목적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한 살맛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눈을 떠서도 여전히 옛날과 같은 목적으로 산다면, 눈 뜬 기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눈뜸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나를 향한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 뜻과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참 괴상하고 귀찮은 방법처럼 보입니다. 왜 굳이 이렇게 하셨을까요? 차라리 돈을 내라거나, 평생 섬기라거나, 백일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면 사람들이 더 쉽게 납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무언가를 얻는다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리는 다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모든 것을 이루게 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중요한 것은 소경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소경이 한 일이라야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까지 걸어간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그가 눈을 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실로암에 가서 씻은 것이 아니라 그 한 것이 보잘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뜨게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인 것입니다.
소경이 눈을 뜨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순종에 앞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순종은 결국 이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는 발걸음인 것이지요. 소경이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으로 가는 과정은 어쩌면 창피하고 어리석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진흙이나 실로암에 눈을 뜨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말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믿고 순종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을 명령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내가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면 낫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방법에 의존하는 것일 뿐입니다. 참된 믿음은 나에게 명령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지금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진흙과 물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진흙과 물을 사용하신 예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셨고, 나를 향한 사랑으로 나를 고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믿음이 소경으로 하여금 창피함과 의심을 넘어 순종하게 했고, 결국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하게 했던 것입니다. 진흙이나 물 같은 도구나 방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 속에서 그분의 능력과 사랑을 신뢰하며 순종한 소경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단순히 더 나은 환경이나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 자신을 보게 하시고, 그 안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눈을 떠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고, 그분과 동행하며 흥미진진한 “영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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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애님의 댓글
신정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걸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저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 시키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