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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못 할 아버지(2) (누가복음 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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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ate24-07-02 09:30 조회 Read5회 댓글 Reply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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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은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실 뿐 아니라 나의 원모습을 회복시키는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상대방을 그대로 받아줄 뿐 아니라 만일 망가졌다든지 병들어 있다면 치유하며 회복시킵니다. 병든 아이를 그냥 가만히 두는 부모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아들은 부유한 가정의 둘도 없는 막내아들이었지만 돼지 치다 나온 신세 처량한 거지였습니다. 다시 아들로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도 없고 그저 아버지의 집에 종이나 되려고 생각했던 아들. 또한 아버지가 종같이 부려도 아무 할 말이 없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아들이 준비했던 대사를 듣는 둥 마는 둥, 종들에게 명령하여 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기며 가락지를 끼우라고 종들에게 명합니다. 다시 원래 아들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종으로 아들을 받아주신 것이 아니라 아들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한 부유한 가정의 아들임을 상징하는 옷과 신발과 가락지를 다 팔아먹고 그저 종살이나 하며 배나 채우려고 기어들어 오는 녀석을 아버지는 아들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시킨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아들의 위치로 올리는 것이 당연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기뻐하시는 사랑입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이 기뻐 송아지를 잡아 풍악을 울리며 잔치를 벌이라고 명하였습니다. 돼지우리에서 일하다 쫓겨난 아들, 별로 기뻐할 이유가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남 보기에도 창피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서 잔치한 것입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종들은 물론 맏아들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불평불만이 나올 정도로 아버지가 기뻐한 것이었습니다. 이 아버지의 기쁨은, 이 아들이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아서 돌아왔다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 아들을 귀히 여겼기에 다른 것들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사랑하는 자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며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도 아니요, 잘해서도 아니요, 착해서도 아니요, 이뻐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로서 우리를 돌아보시고, 보호하시고, 치료하시고,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바로 이 사랑이 우리를 위해 낮아지시고, 섬기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확증되었으며, 오늘날 성령께서 성경 말씀으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까지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이 구원의 순간이요 참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나를, 하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믿어집니까? 믿음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내게 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에 관한 말씀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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