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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주인이신 예수님 (20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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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4-07 01:01 조회 Read1,159회 댓글 Reply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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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에서는 만사가 시간의 지엄한 명령에 굴복한다. 오늘날의 생산방식은 작업과정 하나하나가 특정 시간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비단 컨베어 벨트에  매달린 작업뿐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 활동은 전적으로 시계에 맞추어 조정되어 있다. 시간은 그냥 시간이 아니라, 바로 돈이다. 기계는 최다한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에게는 따라서 기계에 맞춘 리듬이 강요된다. 기계로 인해서 시간은 인간의 지배자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단지 휴식시간에만 약간의 선책의 여지가 주어진다. 그렇지만 대체로는 여가시간마저 노동시간과 마찬가지로 조직화 된다. 또는 이와는 정받대로 우리는 시간이라는 폭군에 대해서 완전히 나태한 상태로 반항하기도 한다. 시간의 요청을 전적으로 묵상하며 자유에의 망상을 길러낸다. 그러나 그것도 실제로는 시간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일시적인 탈출에 불과하다. (Erich Fromm, “소유냐 존재냐” 에서 발췌함)

구태여 에릭프롬과 같은 소위 석학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이 시간의 노예 혹은  신봉자(?) 처럼 전락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의 어떤 한 궤적을 복기해 본다고 할 때 우리 자신의 존재는 보이지 않고 시간의 압박에 떠밀린 끝에 이루어진 결과물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뿐이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이든, 그 어떤 성취물이든 우리는 그것들이 자신의 존재자체인양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들을 위해서 혼신을 다한 자기라는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상실감, 허탈감과 자괴감에 잠시 빠지곤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일 뿐 곧 이어 또 다른 시간의 재촉에 쫓겨 여전히 달려가야만 한다.
 
예수님은 공적생에 동안에 어떻게 사셨을까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예수님과 같이 영일없는 일과를 소화한 이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 행하신 기적의 소문을 듣고 새벽 부터 시작해서 밤늦은 시각까지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고침을 시행하셨다. 또한 예수님 가시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호시탐탐 정죄할 기회를 노리는 반대자들로 인해서 개인적인 시간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열두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동거하셨으므로  Privacy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한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시간과 일과에 쫓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시간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모범을 보여 주셨으니, 곧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6:12),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고(막 1:35),, 군중을 피해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신 것이 그것이다.(요6:15)

예수님께서는 시간에 매이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만나시는 시간을 중심으로 시간을지배하셨다.
우리가 Quiet Time과 기도시간을 중심으로 하루의 일과를 편셩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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