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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Distancing, 거리두기(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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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3-27 23:09 조회 Read1,077회 댓글 Reply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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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교도소를 방문하면 대개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재소자와 마주보며 전화로 통화를 한다. 그 때 느끼는 그 답답한 단절감은 마치 가슴을 조이는 듯한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전대미문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우리는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낯선 단어에 꼼짝 없이 눌려 서로 타인인 듯 여기며 각자의 처소에서 칩거의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업소들이 Driving-Thru  외에는 문을 굳게 닫고 있어 우리는 마치 길 잃은 철새꼴이 되었고, 그렇게도 허물없고 친숙하던 McDonald, Starbucks 에서마저 단절을 느끼곤 한다. 

본래 사탄은 “이간하는 자, 분리하는 자” 이다. 에덴동산에서 마귀는 아담에게 죄를 짓게 함으로서 하나님과 사이를 갈라 놓았다.  죽음의 벽으로 단절된 저주의 거리두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 역시 한 몸이었으나 상하관계로 그 사이가 뒤틀리고 말았다. 땅은 아담의  삶의 터전이고 이를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었지만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원수가  되었다. 

그 결과 죄의 저주가운데서 태어나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도 깊은 단절이 있으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들은 버려 두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놓인 죽음이라는 깊은 간격과 단절의 벽인 것이다.     

•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롬 1:24)
•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롬 1:26)
•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롬 1: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실 수만 없으셨다.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 죄인들 가운데 보내셨던 것이다. 창세전부터 영원한 영광가운데 하나님과 간격 없던 예수님께서 이 세상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의 죽음의 벽을 깨뜨리시기 위하여 고통과 단절을 심자가에서 죽음으로 감당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 15:34)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 그 거룩하신 죽음의 단절이 하나님과 우리의 단절을 메우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요일 4:8)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젔느니라. (엡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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