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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죽노라. (20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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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4-03 22:24 조회 Read1,000회 댓글 Reply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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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에 첫 순교자인 스데반집사가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기 직전 하늘을 향해서 이렇게 외쳤다. 마치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 예수님의 모습이 재현되는 듯한 죽음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또 자신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스데반집사로 하여금 이토록 거룩하고 장엄한 죽음을 감당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죽음이라기보다 복음의 생명력의 폭발이요 부활신앙의 승리이다.

스데반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하나로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그리스도인이었다.(행6:6) 또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 가운데 행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는 신실한 전도자이었다.(행6:8-9) 그가 공회 앞에서 목숨을 걸고 예수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구약성경을 풀어서 변증한 것은 진정 복음 선포의 압권이다. 스데반은 성경에 기초한 신앙생활에 철저한 성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순교는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잘 다져진 믿음생활의 결정체이었고, 그 핵심은 부활신앙이다.   

그 때 그 거룩한 순교의 현장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증인으로 있었다. 그는 율법 자체에 노예가 된 바리새인이었으므로 유대인의 기준으로 볼 때 신성모독을 저지른 스데반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스데반의 거룩한 순교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성싶다. 회심 후에 나타나는 바울의 신앙적인 삶은 마치 스데반을 멘토로 삼고 배운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바울은 회심한 후에 주님을 위하여 날마다 죽음에 넘겨지는 것 같은 치열한 도전으로 영육 간에 사역을 감당했다. 실제적인 위험과 싸우고, 영적으로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고자 영적전투를 계속했다.(고전15:32-34) 죽음을 초월하는 부활신앙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며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외치며 순교자적 삶을 이어가다가 결국은 순교했다.

이 죄악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순교자적 삶이다. 아니면 죄와 타협하는 길 밖에 없다. 2천년전 생명을 걸고 핍박을 견디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일의 삶이 순교이었을 것이다. 오늘 체포되지 않을까, 내일 처형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주님 재림하시기를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나보다. 그러므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부활신앙에 뿌리를 둔 순교자적 신앙이 삶이고, 매일의 삶 자체가 순교자적 신앙생활이었을 게다. 어차피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죽어 가는데, 과연 무엇을 위해 죽어가고 있는지? 마침 오늘은 부활주일 이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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