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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하나님의 뜻 그리고 자유의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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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1-12 17:18 조회 Read249회 댓글 Reply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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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하나님의 뜻과 자유 의지 (1)

온 인류가 품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자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장 거침돌이 되는 주제입니다. 제가 이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신앙인이 아니라 아직도 이 돌에 (돌이 아니라 태산) 걸려 넘어지며 무르팍이 깨지며 또 일어나며 주변 분들과 같이 걷고자 하는 의도로 조심스레 접근해 봅니다. 또한 지금 우리 교회에서 하는 주일 학교 성경 공부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인과응보적인 삶을 배우고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당연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 종교인, 철학도, 무신론자 등등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도덕성/인간성 (morality/humanity) 은 우리가 선은 복을 받고 악은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며 살게 하였습니다. 비록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죄는 나쁜 것이고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선은 좋은 것이며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삶의 구조는 욥의 시대 훨씬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하게 살았던 욥은 이유 없는 고난을 받는 것이 어이가 없이 억울했고 그의 친구들은 이유 없는 고난이란 없다며 지은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라고 욥을 다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 없는 고난 가운데 고통받는 욥에게는 황당한 것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이유 없는 고난이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가 아닐 수 있지요. 인과응보적이 아닙니다. 그것이 (인과응보적) 당연한 것 같지만 (나쁜 x들이 벌을 받아야 속이 후련하지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시편 기자 아삽도 그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편 73:3).”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악인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악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악인도 있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선인 중에도 그런 선인이 있고 그렇지 않은 선인도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임하는 고난이나 형통은 우리가 행한 죄나 선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질문은 ‘왜 나에게 이러한 고난이 임하는가?’가 아니라 ‘이러한 나의 고난/형통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며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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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Reply List

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저의 마음에 합하는 칼럼 감사합니다.
고통을 대하는 나의 attitude애 따라, 고통은 그럼에도불구하고 감사요 축복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의 법칙 2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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