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운동하는 믿음 (요한복음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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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10-24 20:07 조회 Read1,331회 댓글 Reply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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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우리의 허술하고 허망, 허탄한 현실 가운데서도 소망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손쓸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질지라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다고 해서 그 누구나 다 그 소망을 보거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눈이 열리고 시각이 바뀌기 전에는 결코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소망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말씀과 성령 곧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며 그 믿음으로 소망을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황당하고 절실한 상황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소망을 갖고 예수님께 나왔듯이 말입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저 한마디 퉁명하게 내뱉은 말 같지만, 소망과 기대가 실린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불평이나 체념이 아니라 소망과 기대가 담겨 있는 믿음의 고백(Confession of faith)이었습니다. 아마 옆에 있던 요한도 그 시점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결국 이 마리아의 믿음과 신앙으로 인해 기적이 시작된 것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어떻게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마리아가 믿음을 타고난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부터 믿음이 좋았다고 우리는 배우거나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나타났을 때 두려워했습니다. 또 천사가 성령으로 인해 잉태한 것을 알려 주었을 때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의 친척 엘리사벳에게 가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일을 보고 믿으라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긴가민가 하면서 엘리사벳을 찾아가 만나고 나서야 믿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그 말씀의 체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자신의 몸을 통해 이 땅에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자기 아들 예수와 함께 이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추측건대 연회장의 음식 접대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문제를 예수님에게 갖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다른 아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랑, 신부는 물론이요 그 아무도 포도주가 동이 난 것을 몰랐을 뿐 아니라, 안다 알지라도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리아는 당황하지 않고 예수님께 직행합니다. 예수님은 뭔가를 할 수 있음을 직감했던 것입니다. 비록 지금까지 무명인으로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제자들을 부르고 사역을 시작한 예수님은 분명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자기 아들이 아닌 독생하신 하나님임을 알고 믿었던 것입니다. 30년 전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임마누엘 하나님 예수,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당시 마리아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도, 그 누구도 믿어주지도 믿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마리아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체험하고 믿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리아의 믿음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우리도 절대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사자가 전한 말씀을 직접 듣고 또 자기 몸으로 직접 체험한 예수님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그것도 30년 동안, 의심하지 않거나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에게 나아갔습니다. 다른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개인적인 체험은 나로 하여금 믿음을 갖고 지키게하며 결국 그 믿음은 우리에게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살아 운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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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목사님,
이부분의 말씀하신 뜻이 잘 이해가 안되서요…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부터 믿음이 좋았다고 우리는 배우거나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나타났을 때 두려워했습니다. 또 천사가 성령으로 인해 잉태한 것을 알려 주었을 때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38 보면,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한 부분과,
누가복음 22:42, 마가복음 14: 36 에서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이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두 부분에서 인간적인 의심과 두려움이 믿음이 없기 때문일까요?
마리아가 하나니의 아들을 보내는 통로로 사용되었을때는 마리아가 이미 그럴만한 여인이 아니었을까요?
그 시대의 통념을 미루어 보아, 동정녀가 마리아 뿐만은 아니었을텐데요??
우리의 삶에서 나에게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일어 났을때, 의심하고, 두렵고, 반문하는 것이 믿음이 없기 때문일까요?
Don Kim님의 댓글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마리아는 그럴만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천사가 찾아 갔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은 상황과 사건을 통해서 그 정도가 드러나며 또 단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믿음이 있어 보이는 마리아였지만 막상 천사가 나타났을 때 두려워했고 또 잉태의 소식을 알렸을 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반문을 한 것이지요. 계속된 천사의 설명(말씀)으로 인해 그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기 보다는 있는 믿음이 이러한 "극한상황"을 통해 드러나며 순전해지고(purify) 강해(fortify)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철강석을 통해 강철이 나오듯이 말입니다.
황재임님의 댓글
황재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마리아가 천사의 부름을 받았을때가 완전한 성인이 아닌 10대초중반대였던걸로 압니다. 그 어린나이에 천사를 통해 잉태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때 과연 얼마만큼의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일수 있었을까요? 결혼하기도전에 아이를 가진다는건 곧 그 사회에서 돌맞아 죽을 일임을 그녀도 알았을것이기에 환영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에겐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도 있었기에( 하나님이 선택한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두려움을 넘어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임이 아니였을까 짐작해봅니다. 할례를 위해 성전에 들어갔을때 안나와 시몬의 예언을 엄마의 깊은 가슴에 담고 30년이란 시간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성장을 봐왔기에 그 어느누구보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일에 대한 믿음이 차곡차곡 쌓여진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