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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달라고 한 여인 (요한복음 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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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11-15 10:29 조회 Read1,210회 댓글 Reply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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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물을 한 잔 달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핀잔하는 이 여인. 그 달라고 하는 이가 도대체 누구이고 그가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 족보를 들추어 가며 횡설수설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대와 사마리아가 갈라진 지 거의 900년이 지났으며 성막과 성전에서 지내던 제사법은 거의 1500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의미가 사라진 제사를 드렸을 뿐 아니라 그 예배를 집도하는 제사장들조차 제사의 참 의미보다는 형식과 잿밥에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그저 제물을 받아 제사를 드리고 나머지는 본인들이 사용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을 기록하고 전수하는 극소수의 서기관들조차 그 기록한 말씀과 함께 말씀의 의미를 배우고 전수하는 사명자가 아니라 기록하고 복사하고 때때로 읽어주는 일군으로 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감히 아무도 제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기에 계속 행하며 또 다른 이들로 하여금 같이 행하도록 강요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틀리더라고 같이 틀리면 덜 창피하거든요.

우리는 여기서 이 여인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메마른 영혼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를 주시고자 사마리아까지 먼 길을 걸어오신 예수님, 그 여인과 말을 붙이려고 물을 한 잔 달라며 도움을 요청하신 예수님, 또한 땡볕에서 물을 길어야만 하는 껄끄러운 삶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애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때 비로소 그가 주시는 생수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겨우 물바가지, 물항아리 하나)과 우리의 과거와 족보나 들추면서, ‘당신이 나보다 뭐가 잘났고 또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는 투로 빈정대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안타깝고 비참한 상황이 바로 자신의 현실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녀의 관심 끈을 계속 잡아당기십니다. 얼마나 호기심 가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매일 물 길으러 나오는 자신의 처지가 괴로웠는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겠다고 하니 믿어지지는 않더라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런 물이 있다면 대낮에 물 길어 나오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참으로 호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에라 밑져 봤자 본전이지' 하며 그 물을 달라고 합니다.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어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얼마나 물 기르러 나오는 것이 부담되었고 힘들었으면 지나가던 행인이 그저 한마디 말한 것을 그냥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 염치 없이 달라고 하였겠습니까? 바로 이 시점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인으로의 시작입니다. 믿음(신앙생활)의 시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믿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100% 확신 속에 살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아직 이해는 되지 않지만, 혹은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믿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으로 생각하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믿을만하다는 확신이 51%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100% 믿을 수 없지만 예수님을 보니 이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안 믿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그 물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밑져봤자 본전이기 때문입니다.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안 계시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믿을만한 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히브리서 11:4절에서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상주시는 하나님임을 믿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것을 100% 확신이 있어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00% 확신이 있더라고 그것이 변할 수도 있고 또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51%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안 계시는 것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상주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상 주시는 분이신지 벌주시는 분이신지를 생각해 보면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더 믿음직스러우니 하나님이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일 아닌 것 같으면 믿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어달라고 배 째라는 분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만한 수많은 "표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믿고 안 믿고는 우리의 선택인데 바로 이 선택을 51% 확신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달라고 했던 예수님과 자신의 처지가 갑자기 바뀐 것을 보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고 탄탄해 보였던 그 여인, 퉁명스럽고 불친절했던 그 여인, 그러나 그 거칠고 딱딱한 겉모습과는 달리 아무도 모르는 문제가 속에서부터 그녀를 삼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기 내면의 문제를 이제 더 이상 억누르거나 부인하거나 같이 갈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내면의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에 그 물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무겁고 두렵고 복잡한 심경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아침 일찍 나서듯이 말입니다. 속이 비뚤고 거칠고 딱딱하고, 분리되어 있는 우리, 겉으론 강한척해도 여러 문제로 삶이 무너져가고 있는 나 한 사람을 찾아서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걸으시는 하나님, 바로 우리가 영접하고 믿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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