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자비의 집) 연못가 (요한복음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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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11-26 09:10 조회 Read72회 댓글 Reply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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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명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양의 문이라는 입구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는데 그곳은 많은 지병 환자가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던 곳이었습니다. 가끔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놀이하는데 그 후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을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것입니다. 명절이라 모든 사람이 바쁘고 들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은 이 병자들이 모여 있는 이 베데스다 연못을 찾았습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해 자비의 집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연못가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아마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 등등, 의학으로 할 수 없었거나 돈이 없었거나 이미 약을 쓰기에는 늦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나을 수 있다는 흘러 내려오는 전설 때문에.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 중 한 사람씩밖에는 나을 수 없었으며 그 기회도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가운데 함께 모여 서로 눈치 보며 지냈다는 것입니다. 물이 동하는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천사가 오는 날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물에 들어가는 순서가 정해진 것도 아닌, 오직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희미한 전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희미한 전설에 한 가닥 소망을 갖고 물이 언제 동하나 긴장된 상태로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지만 기다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며칠이 지나니 긴장도 풀리고 몸도 풀어져 자리 깔고 누워 허송세월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그러면서 서로 같이 이야기도 하고, 음식도 나누고, 서로의 병과 문제도 나누며 친해졌을 것입니다. 아마 비슷한 처지에 있었기에 좀 통하고 또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 친구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겠습니까? 유유상종이라고 서로 같은 처지에 있으며 서로 위로하고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줄 알았던 불행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물이 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는 서로 친하고 위하고 이해하는 참 친구인 것 같았지만 일단 물이 동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다들 미친 듯이 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우정이고 친분이고 뭐고 없이 미친 듯 날뛴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맺고 쌓고 풀고 하던 서로 간의 관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누가 내 옆에 있고 없고, 뭐가 옳고 그르고, 위아래 따질 겨를 없이, 악을 쓰고 밀치고 당기며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살기 위하여! 그러나 내가 살려면 남들을 짓밟고서라도 일등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비극적 현실! 더 비극적인 것은 낫는 사람은 단 한 명! 더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닌 전설! 그러나 더더더욱 비극은 이 비극에 현혹(중독)되어 그 생지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이 연못가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아마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 등등, 의학으로 할 수 없었거나 돈이 없었거나 이미 약을 쓰기에는 늦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나을 수 있다는 흘러 내려오는 전설 때문에.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 중 한 사람씩밖에는 나을 수 없었으며 그 기회도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가운데 함께 모여 서로 눈치 보며 지냈다는 것입니다. 물이 동하는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천사가 오는 날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물에 들어가는 순서가 정해진 것도 아닌, 오직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희미한 전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희미한 전설에 한 가닥 소망을 갖고 물이 언제 동하나 긴장된 상태로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지만 기다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며칠이 지나니 긴장도 풀리고 몸도 풀어져 자리 깔고 누워 허송세월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그러면서 서로 같이 이야기도 하고, 음식도 나누고, 서로의 병과 문제도 나누며 친해졌을 것입니다. 아마 비슷한 처지에 있었기에 좀 통하고 또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 친구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겠습니까? 유유상종이라고 서로 같은 처지에 있으며 서로 위로하고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줄 알았던 불행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물이 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는 서로 친하고 위하고 이해하는 참 친구인 것 같았지만 일단 물이 동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다들 미친 듯이 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우정이고 친분이고 뭐고 없이 미친 듯 날뛴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맺고 쌓고 풀고 하던 서로 간의 관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누가 내 옆에 있고 없고, 뭐가 옳고 그르고, 위아래 따질 겨를 없이, 악을 쓰고 밀치고 당기며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살기 위하여! 그러나 내가 살려면 남들을 짓밟고서라도 일등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비극적 현실! 더 비극적인 것은 낫는 사람은 단 한 명! 더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닌 전설! 그러나 더더더욱 비극은 이 비극에 현혹(중독)되어 그 생지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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