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놀”하는 하나님의 은혜 (요한복음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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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01-14 08:33 조회 Read1,163회 댓글 Reply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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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의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의 이야기는 단순한 용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변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단지 정죄로부터 구원하신 것만이 아니라, 두 번째 기회를 주시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동일한 은혜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 여인은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혀 나옵니다. 그녀는 성전 뜰로 끌려나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였고,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며 완전 죽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그녀는 돌로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녀를 단순한 예시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무기로 삼았습니다. 여인은 부끄러움과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죄의 무게를 느끼며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판결을 요구했을 때, 예수님은 즉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땅에 엎드려 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쓰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글씨가 아니라 예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입을 열었을 때, 그 대답은 모든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한 마디로 예수님은 초점을 여인의 죄에서 정죄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옮기셨습니다. 이 한 여인을 죽이겠다고 돌들고 악악대는 자신들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 여인이 자신의 딸이라면, 누이라면, 친한 친구라면 그러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네가 이 여인을 돌로 쳐죽이겠다고 나섰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씩 돌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죄할 위치도 권리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괜히 율법을 들먹이며 자신들보다 약한자를 찾아내어 위협하고 이용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조폭, 마피아, 카르텔이라고 하는데 금융계, 교육계, 정치계는 물론이요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겁주고 이용하는 짓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 것이지요.
이제 여인은 예수님과 단둘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녀를 정죄할 자격이 있으신 예수님은 전혀 듣도보도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 순간 여인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귀를 의심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확고부동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놀라게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놀라게 할 뿐 아니라 감화, 감동하게 하며 이제 새로운 삶에 필요한 생명력, 운동력, 영향력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와 함께 주어지는 영생으로의 초대입니다. 나의 죄를 자신의 의로 덮으심으로 나같은 죄인이 의인으로 살게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은혜에 대해 디도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게 하셨다.”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이 이야기 속 여인은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혀 나옵니다. 그녀는 성전 뜰로 끌려나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였고,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며 완전 죽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그녀는 돌로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녀를 단순한 예시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무기로 삼았습니다. 여인은 부끄러움과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죄의 무게를 느끼며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판결을 요구했을 때, 예수님은 즉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땅에 엎드려 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쓰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글씨가 아니라 예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입을 열었을 때, 그 대답은 모든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한 마디로 예수님은 초점을 여인의 죄에서 정죄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옮기셨습니다. 이 한 여인을 죽이겠다고 돌들고 악악대는 자신들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 여인이 자신의 딸이라면, 누이라면, 친한 친구라면 그러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네가 이 여인을 돌로 쳐죽이겠다고 나섰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씩 돌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죄할 위치도 권리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괜히 율법을 들먹이며 자신들보다 약한자를 찾아내어 위협하고 이용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조폭, 마피아, 카르텔이라고 하는데 금융계, 교육계, 정치계는 물론이요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겁주고 이용하는 짓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 것이지요.
이제 여인은 예수님과 단둘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녀를 정죄할 자격이 있으신 예수님은 전혀 듣도보도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 순간 여인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귀를 의심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확고부동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놀라게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놀라게 할 뿐 아니라 감화, 감동하게 하며 이제 새로운 삶에 필요한 생명력, 운동력, 영향력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와 함께 주어지는 영생으로의 초대입니다. 나의 죄를 자신의 의로 덮으심으로 나같은 죄인이 의인으로 살게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은혜에 대해 디도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게 하셨다.”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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