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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형, The Older Brother [ 누가복음 15:11 - 1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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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thor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ate19-11-21 23:38 조회 Read8,511회 댓글 Reply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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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탕자의 형, The Older Brother [ 누가복음 15:11 - 15:24 ] - 찬송가 525 장
[그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누가복음 15:2)

작가 헨리 나우웬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박물관에 가서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을 오랫동안 감상했던 때를 돌이켜 봅니다. 날이 저물며 근처 창문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바뀌면서 나우웬은 빛이 바뀌는 것만큼 여러 다른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달리 보이는 그림 하나하나는 망가진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서로 다르게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나우웬은 네 시 쯤 되니까 그림 속의 세 인물이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은 탕자인 동생이 집에 돌아오자 극진히 환대한 아버지에게 분개한 큰 아들이었습니다. 어쨌든 동생은 상당히 많은 집안 재산을 낭비함으로써 가족을 내내 고통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지 않았던 가요?(누가복음 15:28-30).
다른 두 인물을 보며 나우웬은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로 다가왔던 죄인들에 대해서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1-2절).
나우웬은 그림 속의 모든 인물들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낭비하는 삶을 살았던 작은 아들, 비난하는 형,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어떤 사람도 다 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렘브란트의 그림 어느 부분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이야기는 우리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와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다시 돌아볼 수 있을까요?
빛이 바뀌어갈 때, 우리는 그림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제 모습을 볼 수 있게 도와주소서.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November 22, 2019 Friday
The Older Brother [ Luke 15:11 - 15:24 ] - hymn 525
[They] muttered, "This man welcomes sinners and eats with them.". (Luke 15:2)

Author Henri Nouwen recalls his visit to a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where he spent hours reflecting on Rembrandt’s portrayal of the prodigal son. As the day wore on, changes in the natural lighting from a nearby window left Nouwen with the impression that he was seeing as many different paintings as there were changes of light. Each seemed to reveal something else about a father’s love for his broken son.
Nouwen describes how, at about four o’clock, three figures in the painting appeared to “step forward.” One was the older son who resented his father’s willingness to roll out the red carpet for the homecoming of his younger brother, the prodigal. After all, hadn’t he squandered so much of the family fortune, causing them pain and embarrassment in the process? (LUKE 15:28–30).
The other two figures reminded Nouwen of the religious leaders who were present as Jesus told His parable. They were the ones who muttered in the background about the sinners Jesus was attracting (VV. 1–2).
Nouwen saw himself in all of them—in the wasted life of his youngest son, in the condemning older brother and religious leaders, and in a Father’s heart that’s big enough for anyone and everyone.
What about us? Can we see ourselves anywhere in Rembrandt’s painting? In some way, every story Jesus told is about us. MART DEHAAN

* How might you reflect again on the story Jesus told and on the Rembrandt painting?
As the light changes, where do you find yourself?

* Father, help me to see myself for how much You love me.

11. Jesus continued: "There was a man who had two sons.
12. The younger one said to his father,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estate.' So he divided his property between them.
13. "Not long after that, the younger son got together all he had, set off for a distant country and there squandered his wealth in wild living.
17. "When he came to his senses, he said, `How many of my father's hired men have food to spare, and here I am starving to death!
18. I will set out and go back to my father and say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19.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make me like one of your hired men.'
20. So he got up and went to his father.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21. "The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22.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Quick! Bring the best robe and put it on him. Put a ring on his finger and sandals on his feet.
23. Bring the fattened calf and kill it. Let's have a feast and celebrate.
24. For this son of mine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So they began to celeb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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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Reply List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주님께서 주신 탕자와 아버지의 비유(parable)은 아버지의 사랑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 곧 우리르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극히 일부분만 전했던 것 같습니다.

탕자가 지은 가장 큰 죄는 아버지의 주권을 무시하고 떠나서 떠나서 자기중심대로 산 것입니다. .
그가 아버지를 떠난 순간 아버지에게 그 아들은 죽은 것입니다.
이 세상 죄인들의 하나님을 얗한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주권을 떠나서 자기 중심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들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일에는 탕자의 형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서 충성하는듯 보이지만 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심정에는 관심이 없던 자이었습니다.
주야장창 집나간 아들(죽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간절한 심정과는 상관이 없는 불효자(탕자)이었습니다.

주님,
제가 무조건적으로 용서 받은 탕자로서 과연 얼마나 감사하며 아버지께 효도를 바치고 있는지요?
또한 저는 이 시대의 탕자(불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얼마나 헤아려드리고 있는지요?
행여 탕자의 형과 같은 위선적인 의인은 아닌지 두려운 심정으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봅니다.
저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 "탕자의 심정"으로 효도하는 아들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 

* 우리가 모르는 중에 인생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고 고통하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저들을 어루만지심으로 위로와 능력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신정애님의 댓글

신정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진심으로 회개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을 봅니다.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회개할 때 이런 모습임을 깨달으며 주님 앞에 죄인이었던  저를  기억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사라님의 댓글

이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돌아온 탕자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풑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봅니다.자기의 분깃을 다 허비하여 거지가되어 죽게되었기에 돌아왔습니다.
어떠한 질타도 아니하고 그저 안고 입마추는 아버지의 그 사랑은 죄인을 부르러 오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십니다.
돌아온 탕자로써 사랑에 빗진자임을 잊어버리고  비판적이고 정죄하는 무리속에 완악자가 되지나 않았는 지 회개합니다.상처를 보듬어주며 위로해주는  주님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금요기도회에도 주님께서 함께하여주시옵소서.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탕자였다가 지금은 형처럼 불만하고 시기하는 자가 되진 않았는지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동생이 돌아왔을 때 함께 기뻐하고 위로하고 품어주는 자가 되어야 할 텐데,
왜 그런지 미움에 아무말도 옷하는 그림속의 형처럼 서있을 것 같습니다.
나 또한 용서받은 죄인임을 기억하며 교만하거나 남을 비판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늘 은혜에 감사함으로 깨어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편견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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