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8 사사기 Judges 19:11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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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ate21-12-08 04:56 조회 Read10,963회 댓글 Reply5건관련링크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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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중심내용
장인의 극진한 환대를 받고 뒤늦게 길을 출발한 레위인과 첩은, 자신들을 맞이해 주는 사람이 없어 해 저문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한 노인의 집에서 쉼을 얻습니다.
[ 사사기 19:11 - 19:21 ] (찬송213장)
기브아에 도착한 레위인 일행
11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레위인 일행을 영접한 노인
16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 Judges 19:11 - 19:21 ]
11When they were near Jebus, the day was nearly over, and the servant said to his master, “Come now, let us turn aside to this city of the Jebusites and spend the night in it.”12 And his master said to him, “We will not turn aside into the city of foreigners, who do not belong to the people of Israel, but we will pass on to Gibeah.”13 And he said to his young man, “Come and let us draw near to one of these places and spend the night at Gibeah or at Ramah.”14 So they passed on and went their way. And the sun went down on them near Gibeah, which belongs to Benjamin,15 and they turned aside there, to go in and spend the night at Gibeah. And he went in and sat down in the open square of the city, for no one took them into his house to spend the night.16 And behold, an old man was coming from his work in the field at evening. The man was from the hill country of Ephraim, and he was sojourning in Gibeah. The men of the place were Benjaminites.17 And he lifted up his eyes and saw the traveler in the open square of the city. And the old man said, “Where are you going? And where do you come from?”18 And he said to him, “We are passing from Bethlehem in Judah to the remote parts of the hill country of Ephraim, from which I come. I went to Bethlehem in Judah, and I am going to the house of the LORD, but no one has taken me into his house.19 We have straw and feed for our donkeys, with bread and wine for me and your female servant and the young man with your servants. There is no lack of anything.”20 And the old man said, “Peace be to you; I will care for all your wants. Only, do not spend the night in the square.”21 So he brought him into his house and gave the donkeys feed. And they washed their feet, and ate and d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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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택님의 댓글
홍민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노인은 사사기 19장 기브아 사건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비록 노인이었으나 늦게까지 밭에서 일하다가 온것을 보면 그는 형편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그네를 돌보라는 율법을 지킬줄 아는 유일한 기브온 사람이었고 이후의 행동을 보아도 그는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는 이 레위인에게 ‘안심하라’ 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샬롬’ 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여행으로 고단한 레위인에게는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노인은 그들을 집으로 초대해 모든 나귀에게 먹이고 사람들에게 성실하게 대접합니다.
이 노인을 볼때 소돔에 살고 있던 롯이 천사를 맞이하던 장면이 겹쳐집이다. 롯은 소돔 성의 유일하게 하나님을 두려워 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것을 내어주면서 까지 하나님의 천사들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롯은 파멸로 달려가는 소돔의 광기를 막을수 없었습니다.
노인은 비록 샬롬이란 말로 나그네를 맞이했으나 그 시절은 진정한 샬롬이 없던 때 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샬롬 - 샬롬이란 말에는 평화, 온전함, 축복 등의 뜻이 있지만 오늘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로 적습니다) 을 입으로는 말하지만 그저 말뿐인 시대입니다. 샬롬은 우리 힘으로 만들어 낼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험악한 사사시대를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것은 혼탁해진 종교 혼합주의 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 뿐입니다. 모든 우상을 버리고 이방인 같은 음탕한 삶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찾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 이십니다.(엡2:14) 하나님이 주신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샬롬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나누는 샬롬이라는 인사로 우리의 마음에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dgar Chang님의 댓글
Edgar Ch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Grace. Something that is not earned. Something that is completely undeserved.
Despite the disobedience of the Levite who spurns the foreigners while keeping a concubine for himself, God works through an old man to take the Levite and is group in for the night. This is the grace of God and the grace of the old man being given to the Levite. The Levite did nothing to deserve this care. He did nothing to earn this care. He was simply cared for.
It is hard to be like the old man. We calculate our risks. We assess people and gauge whether the investment of time and money is worth it. We focus on the improvement that someone might make or the ability and potential that someone has. But, the striking thing about grace is that it is nothing like that. Grace gives out of love - unconditional love. If it must be earned, it isn't grace. If it must be earned, it isn't unconditional. Unconditional love is grace. Grace is unconditional love.
God is this way, but are we? As Christians do we live this way? Are we able to treat others this way?
May God's grace truly be revealed to us so that we too would be gracious to others. May he reveal to us the hypocrisy within our own hearts.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왜 이 한 레위인의 여정을 성경에서는 기록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왕이 없던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제사를 맡은 레위인의 정체성이 온데 간데 없고 자신의 첩을 찾기 위해 여행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운데 살고 있으며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집니다.
어렵게 도착한 기브아 지역에서 동족을 대접하는 전통이나 규약을 따라 자신들을 환대해줄 사람을 기다리지만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레위인이어서 자기는 잘 알고 있었겠지만 저녁 때가 되도록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도 못본체 했거나 아니면 무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그 레위인은 알수 없음이 보입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자신과 동향인 노인을 만나 여정을 풀게됩니다 . 기브아가 이방 민족의 영향을 받아서 였을까요? 자기 소견대로 행동하는 레위인에게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나의 역할, 분문을 되새기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나의 욕심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이웃사람을 실천하게 하소서.
손기일님의 댓글
손기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제 책상 엎에는 2000년 8월 13일에 일본 동경의 니시아라이 교회에서 송별회 때 받은 손편지가 있습니다. 재일동포 교인들이 아쉬움에 손글씨로 써 준 편지입니다. 일본의 타락한 문화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마치 일본의 타락한 문화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 오히려 더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사사기 당시 이스라엘 마을들은 이방 마을들과 섞여서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주변 마을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섞여 사는 것이었던거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한 영향력은 없고, 오히려 주위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에 섞여 살면서도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사는지, 아니면 전혀 차이 없이 살고 있는지 돌아보야야 하겠습니다.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
하나님을 떠난 세상 인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동소이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때로 부터 약 천년 후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베들레헴에서 헤메다가 마굿간으로 가야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에도 환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죄인들이 사는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주님 오실날까지 여전히 그러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로 살기를 소원하며 결단합니다.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유숙할 곳을 찾지 못한채 길가에 있는 레위인에게 한 노인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물론 래위인에게 묻는 것이지만, 모든 인생이 대답해야할 본질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가 곧 그 인생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합니다. .
주님의 은혜에 의탁하여 나는 감히 대답할 수있습니다.
"나는 모태를 통해서 죄인으로 태어 났다가 예수님을 주로 믿고 천국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러한 존재로 살아가지만 주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서는 교회 공동체 외에는 머리 둘 곳이 없을 것입니다.
영원한 본향을 향해서 가는 거룩한 순례자(Holy pilgrim)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거나 불신자이거나 인생 자체가 나그네임은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1)
* 오늘 아이들과 함께 Lancaster Maryland 에 있는 Sight & Sound Theater 에서 "Queen Esther" 관람했습니다.
"Such a time as this(스 4:14), If I perish, I perish.(스 4:16)",말씀을 되새기며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