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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나누기 Quiet Time

02.15 마태복음 Mt 11:11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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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ate23-02-14 22:39 조회 Read7,682회 댓글 Reply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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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말씀 듣기   해설보기  English Edition    

본문의 중심내용

예수님은 침례 요한의 정체성을 설명하시고,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의 냉담함을 장터 아이들의 비유를 통해 지적하십니다. 


[ 마태복음 11:11 - 11:19 ] (찬송258장)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 Matthew 11:11 - 11:19 ]

11Truly, I say to you, 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has arisen no one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Yet the one who is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than he.12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suffered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13 For all the Prophets and the Law prophesied until John,14 and if you are willing to accept it, he is Elijah who is to come.15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16 “But to what shall I compare this generation? It is like children sitting in the marketplaces and calling to their playmates,17 “‘We played the flute for you, and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and you did not mourn.’18 For John came neither eating nor drinking, and they say, ‘He has a demon.’19 The Son of Man came eating and drinking, and they say, ‘Look at him! A glutton and a drunkard, a friend of tax collectors and sinners!’ Yet wisdom is justified by her deeds.”


Who is God like?

Thinking & Understanding


The heavenly people of the new era opened by Jesus were going to enjoy an even greater blessing than John. Those who believed in the words of the prophets all the way up to John knew that John was the Elijah who had been prophesied to prepare the way before the Messiah and that Jesus was that Messiah (vv. 11-15). However, those who did not understand the changing times could not understand John nor Jesus. Instead, they criticised them for not conforming to their ways. Despite this, the ministries of John and Jesus revealed the wisdom of God, who was establishing his kingdom (vv. 16-19).  


Who is Jesus?


V. 19 Jesus is God’s wisdom. His healing of the sick, raising of the dead, and preaching of the gospel to the poor all sufficiently proved that he was a wise and divine being. Just as Jesus proved his identity and authority through his actions, we too must prove the value of the gospel that we preach through our actions. 


What lesson is God teaching me?


Vv. 12-15 Heaven had already invaded the earth. John the Baptist closed off the prophesies of the Old Testament and with that began Jesus’ ministry of heaven. Even today, heaven continues to invade the world and will eventually conquer the whole earth. Christians are people who proclaim the invasion of heaven that began with the coming of the Messiah. 


Prayer


Lord, help me to become a firm citizen of heaven who is not shaken by the tides of the wicked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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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Reply List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subjected to violence, and the violent people have been raiding it.

침노를 당하나니...(has been subjected to violence) ...
천국(천국에 들어가는 특권 혹은 천국의 자녀되는 특권)은 원하지 않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의도적으로 도전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시에 왕권를 얻기 위해서 또는 왕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우던 세태에 비유한 것이겠지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당연히 구원 받는 다고 자부하며 예수님의 복음에 무관심하던 이스라엘 백성 특히 바리새인의 시기관들에게 주시는 경고라고 믿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적극적인 믿음으로 나아와 고쳐주시기를 갈망하는 문둥병자를 비롯한 각종병자를 고쳐주신 것에서 이러한 면모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께서 주시는 궈원의 복음에 별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는 억지로 구원의 은켸를 던져주시지 않는 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일찌기 경고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말며 진주를 돼지 않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켜 너희를 삦어 상할까 열려하라. (마 7:6)
 
오늘날의 사회문제가 그러하듯 예수님 당시의 시대상 역시 진리에 대하여 무관심이었던 듯 합니다.
어린이들의 놀이(결혼식 놀이, 잘예식 놀이)도 반응이 있어야 진행이 되거늘 하물며 천국의 진리의 역사는 어떠하랴?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물며 영원한 천국의 진리, 구원의 도리에 대해서는 무관심이 더욱 가중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위해서 항상 힘써야 함은 그것이 주님의 거룩한 분부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이 부러워할 만큼 보범적인 삶을 통해서...
-  마귀의 손아귀에 잡힌 영혼을 구출해 내겠다는 전투적 자세로...

* 우리 교회가 서로 세심하게 관심을 두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건강한 몸을 이루어 가기를 기도합니다.

황재랑님의 댓글

황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무감각, 무공감 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됩니다 . 
그리고 요한에 대해서나 , 예수님의 행하는 것에 삐뚤게 보고 말하는 세대였던 것 처럼  예수님을 바라보는  오늘날 세대는 어떠한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  오늘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  구원자 되신 예수님에 대해 아무 반응이 없거나 ,  교회에 대해 ,  크리스챤들에 대해 판단하고 무감각하지는 않는가 ?  아니 믿지 않는자들 뿐 아니라 믿는다는  크리스챤들 안에서도  예수님에 대해서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무감동, 무공감, 무반응 하고 있지는 않은가  ?  그럼 나는 어떤가 ?  내 안에 예수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느끼며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나  스스로 질문을 던져 봅니다 . 
교도소 환자들이  오면 수갑에 채워진채로  몇명이  한 방에 모여서 축 느려진채로 자신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들 얼굴에는 웃음이 별로없습니다 , 그냥 가라고 하면 가고  묶인채로 교도관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는게 다 입니다 . 어제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  만약 내가  예수님이 없었다면  자유함 없이 죄이 묶여서  끌려다니며 살아가는 이 죄수들과 같은 삶이지 않을까  !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으로 인해 자유과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반응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겠음을 고백해봅니다 , 내 안에 새겨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에  무감각 하는 자가 아니라 모른척 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에 반응하고 행동할 줄 아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 

-오늘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는 지체들이 말씀에 반응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소서
 -이재진 형제님이 심한감기로 고생하시는데 회복케 하시고 옆에서 돕는 현수자매에게 힘을 더하소서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침노 라는 말에 부정적 의미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리적 강제해서 차지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이것은 때로는 무례하고 성급하고 독선적, 파괴적으로 보일 수 있다.
왜 천국을 이렇게 비유하셨을까? 침노가 아니라 좀더 고상한 표현이 있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선지자나 율법에 따라 종된 수동적인 삶을 살았지만, 이제 예수님이 오셨으니, 그 분을 최우선적으로, 열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믿음으로 천국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알려주시려고 하신 것 아닌가.
- 좀 더 적극적인 나의 믿음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불필요한 것을 버리기 (시간낭비 습관 등)
- 나이 탓 하지 말고 열심을 잃지 말자.

손기일님의 댓글

손기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반응이 없는 것처럼 답답한 게 없습니다. 관심을 주변에 두지 않으면 이럴 수 있습니다. 주변에 관여를 하면 뭔가를 해야 하고 귀찮아집니다. 심하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것 저것 귀찮으니 혼자나 잘 하자며 벽을 치는게 장땡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귀찮은 일을 하러 왔습니다. 나를 걱정해 주고 챙겨주고 잘못하면 지적질도 하고 필요하면 대신 매를 맞기도 하고 죽기까지도 합니다.  참 오지랖입니다. 그런데 그 덕에 내가 살았습니다. 아님 죽은 것처럼 살았을겁니다. 내가 귀찮게 할 인간이 주변에 있나?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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