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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나누기 Quiet Time

04.26 마가복음 10:46 -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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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4-25 23:21 조회 Read4,089회 댓글 Reply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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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10:46 - 10:52 ] 

맹인 바디매오가 고침을 받다 (마 20:29–34; 눅 18:35–43)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46And they came to Jericho. And as he was leaving Jericho with his disciples and a great crowd, Bartimaeus, a blind beggar, the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47 And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areth, he began to cry out and say,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48 And many rebuked him, telling him to be silen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49 And Jesus stopped and said, “Call him.” And they called the blind man, saying to him, “Take heart. Get up; he is calling you.”50 And throwing off his cloak, he sprang up and came to Jesus.51 And Jesus said to him,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And the blind man said to him, “Rabbi, let me recover my sight.”52 And Jesus said to him,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And immediately he recovered his sight and followed him on the way. 



[묵상 질문]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합니다. 맹인 바디매오의 행동에는 어떠한 믿음의 행동(들)이 나타났습니까? 

영적 맹인인 사람들은 어떻게 눈을 뜰 수 있을까요? 


[도움 해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실 때,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방해에 굴하지 않고 간절히 예수님을 부릅니다. 예수님이 부르시자 그는 자기 전 재산인 겉옷을 버리고 예수께로 갑니다. 예수님이 보게 해 주시자, 그는 예수님이 보이는 길을 따라 나섭니다(46-52절).


영원히 재건될 수없는 멸망과 저주의 상징(수 6:26)인 여리고는, 예수님이 들어가셨다가 그냥 나오실 정도로 아무 반응이 없는 영적 불임의 도시였습니다. 그 성에 사는 걸인이요 소경인 바디매오 역시 자기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성과 그성의 바디매오를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내게 오셨다가 아무 반응 없는 나를 보고 그냥 가시게 하지 맙시다.


맹인 바디매오는 보기를 열망했고, 그의 소원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볼 수 있었던 제자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수난의 길로 향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보지 못하던 바디매오는 겉옷까지 벗어던지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비록 육신의 눈은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바로 보는 열린 영의 눈을 가진 자였습니다. 내 눈과 귀가 향한 곳은 어디입니까?


6절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 기착지이므로,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통과하여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했듯, ‘예수’(여호수아의 그리스어 음역)도 여리고를 통과하여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 여정의 초입(8:22-26)과 끝에서 동일하게 시각장애인을 치유하신 이유는 십자가의 길에서 여전히 딴생각을 품고 있는 제자들의 영적 눈이 뜨이기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47-49절   허다한 무리 속에서 바디매오 한 사람의 외침을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십니다. 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더 위대한 유대인의 제국을 세울 거라는 기대의 환호가 무색하도록, 제국의 질서 안에서 소외되고 발언권이 없는 이를 품으십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나를 잘 아시는 주께 나아가 은혜를 구하면, 주님은 내 목소리만 기다리신 분처럼 대답해주실 것입니다.


51,52절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구원’하십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교리적 믿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유일한 재산이며 생계수단인 겉옷마저 내팽개치고 달려 나오는 믿음, 부자 청년은 감당하지 못했던 “네게 있는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10:21)는 명령에 순종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에 응답하여, 예수님은 육체적인 암흑에서뿐 아니라 죄의 암흑에서 그를 구원하십니다. 나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예수께 나아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두고 일어나야겠습니까?


52절   ‘길 가’에 ‘앉아 있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길 위에서’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고 여기던 부자는 영적인 눈이 감겨 있어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지만(10:17-27), 세상에서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었던 바디매오는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세상의 상식과 기대를 뒤엎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10:31)를 보여줍니다. 나는 ‘길 가’의 사람입니까, ‘길 위’의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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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Reply List

Don Kim님의 댓글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하룻길(30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이 본인의 예언대로 죽으러 가는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더욱 큰소리로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눈도 고쳐주셨습니다. 비록 죄를 고백하지도 않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도 않았지만,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시인하였기에 구원에 이른 것일까요? 바디매오의 외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는 것과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다윗의 자손)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라는 거대한 사명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한 맹인 바디매오의 외침(절규)을 외면하지 않고 행렬을 멈추고 그와 대화하며 결국 그를 구원/치유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바디매오의 외침이 없었다면 그에게 다시는 그러한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순간이 바로 은혜의 날이요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오, 주님,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반응하며 순종하는 믿음과 순발력을 갖게 하소서. 바디매오와 같이 나의 자리를 박차고 뛰어 일어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8 And many rebuked him, telling him to be silen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절망의 순간에 포기하기 않고 더 크게 소리지르는 마음을 보게된다. 정말 예수님이라면 치료해주실 수 있다 라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절망스런 상태를 내어드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고백이 예수님을 멈추게 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바디메오를 꾸짖었지만 볼 수 없었던 바디메오는 더욱 더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했다.  눈보다도 귀를 통한 믿음이 있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무엇을 듣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자라며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구원해주신다.
많은 정보의 시대, 다 받아들이고 내것으로 만드려는 욕심속에 예수님께 오는 사람들을 꾸짖는자가 되어버린것은 아닌가?
생의 문제앞에서 해결방법을 몰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삶의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가는  바디메오와 같은 고백을 드리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황재랑님의 댓글

황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님께 반응한 시각장애인 ! 
누군가를 통해 들었는것 같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분이시니  자기의 눈도 고치실 수 있을 거라고생각했을 터!    주위의 사람들이 꾸짖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을 정도로 간절함이 있었던 것 같다 .  예수님 또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그 시각장애인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과 무엇을 구하여야 하는지 아시고 질문을 하신 것 같다.  결과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예수님은 그를 고쳐주셨고 그 시작장애인은 예쑤님을 따랐다.  이 질병은 욱체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 영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다 . 
나에게 있는 문제점,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  주님을  통해 정말 고침과 회복이 일어났으면 하는 건 무엇인지 직시하고 , 알고는 있는가 ?  내가 가진 영적인 장애, 문제점들을 해 결해 주실 분이심을 믿는가?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과 질문에  반응할 자세를  나는  가지고 있는가  !  혹 문제가 해결 되었을때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구원자로 기쁨으로 순종하며 따를 자세가 되어있는가  ?  이런 질문들을 제 스스로에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무엇보다 주님은 모른척하거나 지나치지 않으시는 분에 위로가 됩니다. 
오늘도 주님을 구할 수 있는 은혜가 나에게 주어졌음에 또한 감사가 됩니다 . 
그리고 주님의 질문과 부르심에 기쁨으로 반응할 줄 아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

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

남편을 통해 교회에 나간 이후 나의 삶의 모퉁이마다 알게 모르게 모든것이 하나님 은혜가 아닌것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바디메오처럼 바로 그 길에서 주님을 따라 나서는가?
허우적 거리던 물에서 건져지면 또 요리조리 핑계를 갖다 붙인다.
주님,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나는 왜 이리 나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못할까요? 나의 새해 목표는 내 지경을 넓히자 였습니다. 아직 그것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 감당 못할 부분은 줄어 들겠지요.
주님, 주님께 걱정 끼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랍니다. 믿을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로 오늘도 나의 하루를 감당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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