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7 요한복음 John 16:16 -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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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4-06 22:08 조회 Read11,225회 댓글 Reply2건관련링크
본문
본문의 중심내용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자신을 못 보고 또 조금 있으면 다시 보리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시며, 다시 보게 되는 날엔 온전한 깨달음과 충만한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 요한복음 16:16 - 16:24 ] (찬송336장)
예수님의 말씀과 제자들의 의문
16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잠깐의 근심 후에 올 기쁨
19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구하는 것을 받는 기쁨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도움말
23절) ‘묻다’로 번역된 단어(헬. 에로타오)는 ‘요구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렇게 번역한다면 이 구절은 ‘예수님께 요구할 필요 없이 직접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된다.
[ John 16:16 - 16:24 ]
16“A little while, and you will see me no longer;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ou will see me.”17 So some of his disciples said to one another, “What is this that he says to us, ‘A little while, and you wi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ou will see me’; and,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18 So they were saying, “What does he mean by ‘a little while’? We do not know what he is talking about.”19 Jesus knew that they wanted to ask him, so he said to them, “Is this what you are asking yourselves, what I meant by saying, ‘A little while and you wi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ou will see me’?20 Truly, truly, I say to you, you will weep and lament, but the world will rejoice. You will be sorrowful, but your sorrow will turn into joy.21 When a woman is giving birth, she has sorrow because her hour has come, but when she has delivered the baby, she no longer remembers the anguish, for joy that a human being has been born into the world.22 So also you have sorrow now, but I will see you again, and your hearts will rejoice, and no one will take your joy from you.23 In that day you will ask nothing of me. Truly, truly, I say to you, whatever you ask of the Father in my name, he will give it to you.24 Until now you have asked nothing in my name. Ask, and you will receive, that your joy may be 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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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택님의 댓글
홍민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때 아이를 생각하며 해산의 고통을 참고 이후에는 아이로 인해 큰 기쁨이 충만한것 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위해서 고통을 받으셨고 고통을 받으시면서 구원 받을 영혼들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으로 인해 수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아왔고 그것은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님으로 인해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하고 근심하고 고통을 당할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것들이 충만한 기쁨으로 바뀔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곡, 애통, 근심, 고통은 일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말합니다.
동시에 그 의미를 좀더 확대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슬픔은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죄인된 상태, 영적인 죽음의 상태,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 그로 인해 저주받은 세상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죄인된 상태는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야만 인간은 이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을 누립니다.
또한 오늘 본문 23-24에서 말하는 기쁨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우리에게 강림하신 성령님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비록 우리는 우리 눈으로 부활하신 에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하고 말씀을 통해서 알았지만,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을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예수님의 뜻을 이땅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땅 가운데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19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되심으로 잠시 제자들이 예수님을 뵈올 수 없게 되었다가 제 3일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당시의 제자들이 가지 메시야관으로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죽는다는 것을 전혀 이해 할 수 없었으므로 부활은 더더욱 상상할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을 때 이미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셨습니다.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그러나 제자들 주 아무도 그 말씀이 뜻을 알지 못했고 특히 베드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않된다고 강변하다가 주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일 즉 섭리를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 까닭입니다.
3년 정도가 지나 주님꼐서 죽으실 때가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본문과 같이 제자들은 미궁을 헤메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간적인 측면과 자신들의 이해의 범위에서 받아들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섭리의 차원에서 보지 않고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역시 그런 오류흫 범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동안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말씀에 무지하고 오해하고 나름대로 받아들이다가 넘어지는 것을 많이 봅니다.
구약시대에 성전을 밖에서 보면 결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용서의 은혜를 알수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가 성경 속으로 들어가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성경을 알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십자가의 사역을 임신한 여인이 해산하는 것에 비유해서 쉽게 가프쳐 주셨습니다.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마치 죽음처럼 엄청나지만 결국은 새생명의 출생으로 기뻐하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도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임하는 것과 같이 멸망히 홀연히 임할 것이라고 경고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과 같이 이 세상의 마지막도 결국은 말씀하신대로 임할 것을 믿고 준비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고대하며 깨어 있겟습니다. 주님, 마라나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