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4 마가복음 Mk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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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2-14 06:20 조회 Read4,516회 댓글 Reply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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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을 고치시다 (마 8:14–17; 눅 4:38–41)
[마가복음 Mk 1:29-34]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묵상을 돕는 질문]
예수님의 3대 사역은 복음선포(Preaching), 가르침(Teaching), 병(정신병 포함)고침(Healing)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이 세 가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왜 예수님은 귀신이 자기를 아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참고 해설]
안식일에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베드로의 집에 가셔서 병들어 있는 그의 장모를 고치십니다. 서기관들은 안식일에 치유 사역을 금지함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확보했지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에 억눌린 인생들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남김없이 맡기고 쉼을 누리고 있습니까?
회당이 아니라 수종드는 여인의 평범한 집이 치유와 회복, 생명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가 됩니다(2:1; 9:33). 우리는 이웃을 섬김으로써 예수님께 수종들고 있습니까? 우리 공동체는 예수님의 샬롬(평강)과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쓰임받고 있습니까?
댓글목록 Reply List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2 That evening at sundown they brought to him all who were sick or oppressed by demons.
예수님을 만난, 지켜본 사람들은 모든 병자와 귀신들리자를 데려온다. 예수님만이 고치시며 새 삶을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 종교로 여겨진 전통과 율법을 어기는 모습이었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믿음이 내게도 있다면 나도 예수님께 데려갈 사람을 찾고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병든자와 죄인을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만나도록 해야하지 않는가? 내가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안다면? 얼마나 많이 모였을까? 예수님은 모두 고치셨다. 예외가 없다. 데려온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육과 영을 옥죄는 죄의 사슬을 끊으셨다. 구원의 감사와 이 구원을 전해줄 영혼을 찾는 하루되기.
Don Kim님의 댓글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야고보, 요한, 시몬, 안드레는 벌써 예수님의 측근이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택하시기 보다는 그들이 예수님을 좀 더 적극적으로 따랐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과 권능 있는 병 고침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시몬은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였는데 그 집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본지라 예수님께 이 여자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나아가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그냥 말로 해도 될 텐데 앓고 있는 병자에게 직접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병든 사람의 손을 잡기는커녕 다가가는 것조차 꺼리는 세상입니다. 코로나를 핑계 대고 아예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고 병이나 귀신을 이길 능력은커녕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귀신도 예수님을 아는 세상에서 예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나아가 손을 잡고 일으킬 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오, 하나님, 우리 주변의 병든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측은한 마음과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담대함 능력이 우리 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아가며 살피며 돌아보며 일으키게 하소서!
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시몬의 장모의 병을 고침과 이전의 귀신의 추방이 온 동네에 소문이 난듯합니다.
나도나도 이익 좀 볼까 싶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가 어떤분인지, 어디서 왔는지, 왜이러는지에 관심은 그다지 없어보입니다.
하혈병에 걸린 여인의 간절한 고백과 백부장의 하인의 생명을 간구하며 구했던 마음이 기억됩니다.
결과는 같았을지 모르나, 그 인생이 변하고 다시태어나는 감동은 얼마나 달랐을지 영화 한편 보는듯한 장면입니다.
귀신도 알아보는 메시야를 우리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내가 누구냐 묻지 않으시고, 여기 모인 모든이의 필요를 채워 줍니다.
자기를 더러내지 않고 그저 먼저 줍니다,
이것이 권위요 겸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손기일님의 댓글
손기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병고침 사역이 이루어지는 시작은 그 집에 들어가며 시작됩니다. 집에 초대하는건 내 속을 보이는거와 비슷합니다. 누가 온다하면 식구들은 불편합니다. 특히 보여주고 싶은거만 보여주고 싶은데, 바닥에 먼지, 설거지 통의 더러운 것도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청소를 하지만요. 시몬은 예수님께 말만해도 그 장모를 고쳐 주었을겁니다. 그러면 자신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이민초기에 다 까 놓고 살던 형제, 자매들이 오래보지 않아도 여전히 친하게 느끼는 건 서로 속을 보여서 그런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