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0 마가복음 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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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2-19 23:47 조회 Read451회 댓글 Reply1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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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를 고치시다 (마 9:1–8; 눅 5:17–26)
[마가복음 2:6-12]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묵상 질문]
예수님은 마비환자에게 '네 죄사를 사하노라' 말하는 것이 '일어나서 네 자리를 가지고 걸어가라' 고 하는 것 보다 더 쉽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가 죄를 사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까? 중풍병자가 다시 걸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입니까?
[도움 해설]
5b-12절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치료 사역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질병, 죽음의 원인인 죄를 문제를 해결하는 권세를 지닌 사역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서기관들이 ‘그런 신성모독적인 말은 하지 말고 병이나 고칠 것이지’ 하고 생각하자, 예수님은 “죄 사함의 말과 병 고침의 선언 중 무엇이 더 어려우냐?” 물으십니다. 결과로 입증함에 있어 더 어려운 일인 병 고침의 기적을 베푸실 때는 가만히 있더니,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므로 쉬운 일인 사죄의 말 앞에서는 반기를 드는 그들의 모순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더 어려운 일인 중풍병을 치료하는 기적을 이루셔서, 말에 불과할 수 있는 사죄 역시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입증하십니다. ‘하늘에서’ 하나님 한 분만 행하실 수 있던 죄 사함의 권세를 ‘땅에서’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자)이심을 확언하십니다.
예수님이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돌아오시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집을 가득 메웁니다(1- 2절). 그때 어떤 네 사람이 집 지붕을 뚫고 한 중풍병 환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병을 치료하시지 않고 ‘죄 용서’를 선언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죄인으로 간주해 배척해온 병자에게 용서를 선언하는 예수님이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만으로 중풍병 환자를 고치셔서 정말로 자신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내십니다(3-12절).
댓글목록 Reply List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서기관(The scribes, Secretary) 은 율법 연구가, 권력가, 지도자 계층에 속한다. 이들이 바라본 예수님은 평민과는 다른 관점이었으리라. 자신들의 연구대상 율법에서 예언해온 메시아의 존재를 알고서 진짜와 가짜의 판단 기로에 있었을 것 같다. 안식일을 범하고, 만나면 안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오늘은 죄를 사하는 신성모독죄의 현장에 와있다. 진짜/가짜를 판별해온 그들이 예수님을 가짜라고 판단한 이유는 납득할만하다.
율법의 물질주의, 인본주의, 형식주의 틀에서는 정말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 이다.
말씀을 연구하는 그들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핵심세력이 된것이 정말 아이러니하다. 왜 정 반대의 편에 서게 되었는지...
신앙생활의 연수가 길다고 예수님을 잘 알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고, 인격적인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하루되기.
- 담임목사님 여행에 함께 하여주세요
- 아동부 선교펀드 레이징 준비에 지혜와 영혼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세요
Don Kim님의 댓글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그런 와중에 중풍 병자의 등장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었다. 서기관들이었다. 그냥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떤가 살피려고 왔는데 갑자기 지붕이 뜯겨 나가고 침상이 내려오고 거기다가 예수라는 젊은 선생이 가르치다 말고 “네 죄가 사해졌느니라”고 뜬금없는 말을 한다. ‘감히 누가 죄를 사할 수 있는가? 감히 누가 죄가 사해졌음을 선포할 수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담대하게 자신있게 그의 죄가 사해졌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았기에 그리할 수 있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죄가 이미 사해졌음을 선포하는 것. 그렇다. 우리 죄는 벌써 사해졌다, 단지 모르니 두려움과 괴로움에서 떨고 방황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음은 우리의 죄가 이미 사해졌음을 선포하는 하나님 재판장의 망치 소리이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죄를 사했으니,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는 예수님의 피눈물 나는 외침이다.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이 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를 사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지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죄 사함은 하나님이 미리 하신 것이지 우리의 고백에 따라 죄가 사해지고 아니고가 아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았는가? 절대 아니다! 구원은 죄의 권세/속박에서의 자유인데 죄가 사해졌음을 모르거나 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 죄의 권세에 억눌려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벌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니 그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감옥에 있는 죄수가 죄 사함을 모르고 계속 감옥에서 “나는 죄인이요” 하며 산다고 그 사람이 결코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는커녕 우리 자신의 죄가 사해졌음을 알고 있는가? 우리 죄가 어떻게 사해졌는가를 안다면 분명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도 사해졌음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해졌음을 기뻐하는 것이 구원이 아니겠는가? 서기관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용서하신 마음은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자신들도 열심히 율법을 지켰을 뿐 아니라 남들까지도 지키도록 열심히 입에 거품을 물고 강요한 것이다. 자신들만 그렇게 살기에는 억울해서 그랬을까?
죄사함을 받아들이자! 죄사함을 선포하자! 죄사함을 누리자! 이제 의인답게 살자!
황재랑님의 댓글
황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이 때 중풍병자는 죄와 연관이 있었는것 같습니다 . 서기관들이 보는 앞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말로만이 아니라 일으켜 세우고 죄에서 회복케 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시는 권세. 그 권세가 예수님에게 있음을 보여 주신것이네요 .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 어릴적에 장난으로 동생들이나 친구머리에 손을 얹고서는 네 죄를 사하노라 라고 장난친적이 기억이 납니다 . 그것은 말로서 끝나는 것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실질적인 문제, 진짜 사람들이 생각하던 죄 때문에 이런 병이 걸렸다고 하던 것 조차의 문제도 해결하시고 회복케 하시는 분이심을 봅니다.
우리의 속 마음까지 아시는 주님 ! 나의 죄가 예수님을 통해 해결 됨을 인식하고 사는가 ! 잊어버리는 순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용서함 받은 자 답게 살아가길 원하시지 않을실까 하는 묵상을 해 봅니다 . 죄에서 치료되고 자유함을 누리는 삶 ! 그것이 우리를 행한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이 듭니다 . 오늘도 용서함을 받은자 , 자유함을 누리는자 , 회복된자 답게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갈 줄 아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 그것을 삶으로 보여주길 ....!!
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앞에 5절의 끝에서 작은자야 네 죄가 사하여 졌느리라 하신다…
육체의 병을 고치러 지붕까지 뜯어가며 찾아갔는데, 뜬금없이 내 속에 있는 죄를 거론하신다, 어쩌면 아무도 모를 본인만 알고 있고, 그죄때문에 평생 속으로 끙끙 앓았을 죄인지도 모를일이다,
무슨 죄인지는 묻지 않으신다, 그렇게 찾아온 동지들의 믿음으로 중풍 환자의 중심에 있는 마음의 병이 원인임을 보시고 근본 치료에 나선것이다.
내 환자중에 여기저기가 아프다며 정말 자주 찾아오는 환자가 있었다, 검사도 모두 정상이고, 약도 효용이 없었다, 첫 방문때 부터 불안증이나 우울증에 대해 묻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육체적 고통으로 왔는데 정신적 치료로 접근하기까지는 시간과 신뢰정립이 우선이기때문이다,, 먼저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약도 검사도 해가면서, 단한가지, 자주 오도록 예약을 했다.
어느정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열릴쯤에 불안/우울 진단하는 검사에 동의하고, 치료방향에 순종한다.
어제 오늘의 말씀에서 그 중풍환자가 어떤사람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리고 말을 할 수 있는지 조차도 언급이 없다, 다만 그는 들을 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의사와 무당들을 만났을 것이며, 좋다느건 다 해봤겠지…
그럼에도, 아무 의심의 대꾸 한마디 없이 네상을 가지고 일어나 돌아가라 하니, 그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 앞에서 걸어 나간다..
그야말로 누워서 들어 왔다가 걸어서 나간다..
우와…하는 순간이다.
이순간 의심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다. 이 중풍환자의 마음에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벌떡 일어나볼 용기가 났을까?
물위를 걷지 못했던 베드로와 걸을 수 있었던 벧
로의 모습이 겹쳐진다.
완전 믿음으로 완전 순종하면 일어나는 이 순간의 기적인 것이다.
나의 오늘 아침이 기적이다.
주님, 의심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푸르니님의 댓글
푸르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저는 이 구절에 따르는 해석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분명 제 생각에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을 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고, 그래서 서기관들의 반응도 이런 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려고 어려운 일을 먼저 했고, 뒤 이어 쉬운 일인 일어나 걸어가라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사람들의 입장에서 인가, 예수님의 입장에서 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도 같은데 이 부분이 헷갈립니다..
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맞아요, 저도 헷갈렸어요.
왜 뭐가 더 어려우냐고 물으셨을까요?
예수님에게는 육체의 병고침과 죄사함에 경중은 없을것 같은데 말씀이죠??
손기일님의 댓글
손기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나도 푸르니 자매에 한 표.. 보통 갈등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 심기를 거드리는 말을 피하는 게 쉬운 선택이죠. 힘들어도 바른 말 하는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정애님의 댓글
신정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푸르니 자매 큐티방에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해요^^
Don Kim님의 댓글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예수님은 “네 죄가 사해졌느니라”는 자신의 말씀에 하나님의 권위(authority)가 있음을 말씀으로 병을 낫게 하심으로 증명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정애님의 댓글
신정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서기관들은 중풍병자의 병이 사람의 죄 때문이라 생각해 온 사람들입니다 .. 때문에 그 사람이 일어나 걸어간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죄 사함은 안되고 병만 고쳐주시길 기대하는 모순덩어리 들 입니다. 그들의 생각데로 라면 병 고침을 받은것은 죄 사함을 받은것인데도 죄는 하나님 한 분만 하실 수 있다" 신성모독" 이라 합니다 . 예수님 그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럴수 밖에 없었을 테지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걸 믿을 수 없었을테니까요.
그들안에 있는 닫혀있는 묵여있는 생각 곧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 .. 저에게도 이런 편견들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나 점검해 봅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은 사람들을 바라볼 때 저의 편견 없이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길 도와주시옵소서..
손기일님의 댓글
손기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정답을 이미 정해 놓고 사는 이들에게 아직 경험해 보지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상황이 닥치면 거부하는게 일반입니다. 사고의 경직일까, 아님 일탈을 두려워하는 걸까? 우선 급한 판단을 보류하고 더 깊은 폭 넓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서기관들의 외골수 사고에 예수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나를 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난 어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