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 고린도후서 11:16 - 1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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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0-10 06:26 조회 Read9,244회 댓글 Reply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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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Reply List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자랑이라고 하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세상의 방식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방식 말고는 진리를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문화와 언어(양식)를 따라 전도하며 권면하는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일부러 어리석은 모양으로, 담대히 자신 역시 신분과 경력 면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임을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위하여 바울이 겪은 모든일(옥살이, 태장, 난파, 도피, 강도, 동족/이방인 핍박, 광야, 바다, 배신, 불면, 주림, 굶음, 춥고 헐벗음)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목숨을 모두 내어버린 자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바울의 마음을 매일 누르고 있던일은 교회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약한 자, 실족한 자와 마음을 동일시하는 태도를 봅니다. 그래서 부득불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실패하고 낙오한 인생같지만, 예수님을 위한 고난의 흔적이 자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보여주시고 인도하시는 길을 가면서 내가 선택해야할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사실 멋적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죄인이며 무익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돌아온 탕자(눅 15장)가 죄뿐인 자신의 인생을 자랑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바울사도가 구차하리만큼 부득불 자기를 자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그가 떠나 있는 동안 자기가 양육하였고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는 성도들이 거짓교사들에게 혼을 빼앗긴듯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 모든 고난과 역경과 위험을 복음을 위해서 감당한 것은 과연 초인적인 것이며 주님께서도 귀히 여기실만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목숨을 건 헌신보다 거짓교사들의 얄팍한 속임수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과연 일찌기 예수님게서도 탄식하셨던 그런 현상이 고린도 교회에도 그대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눅 4:24)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귀한 것들과 늘 마주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경홀히 여기기 쉽습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스스로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던 바울이 헛된 자랑을 늘어 놓은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후에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가슴을 치며 회개했을까 상상이 갑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제게 주신 주님의 은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의 연약함과 무익함이 주님의 사역에 거침돌이 되어 죄송 또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주님......
신정애님의 댓글
신정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30. 내가 부득불 자랑 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세상사람들은 자기자랑에 익숙하고 더 자랑할 것이 없을까 전전긍긍해 하는 것을 봅니다.
저에게는 별로 자랑할 것이 없지만 그 속에서라도 자랑거리를 찿으려 했슴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거듭난 자로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하는 자랑만이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