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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 누가복음 10:25 - 1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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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01 22:57 조회 Read10,597회 댓글 Reply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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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말씀 듣기        해설보기(출처)      English Edition

02.02.Tue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본문의 중심내용

예수님은 그분을 시험하는 율법교사에게 영생의 길인 이웃 사랑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주십니다. 이어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하나님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 누가복음 10:25 - 10:42 ] (찬송218장)

율법교사의 시험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29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마르다와 마리아
38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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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Reply List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감히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을 test 해 보려는 율법사의 시도가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그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율법사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리어 그를 test 하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셔서 내려주신 계명이므로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며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율법사들은 하나님의 심정과는 상관 없이 율법자체를 준수하는데 역점을 두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보시기에 이 율법사는 율법이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임을 알면서도 사랑은 실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마치 자기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자임을 과시하려고 이웃의 정의를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율법에 내포된 이웃의 정의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정한 이웃은 이웃을 위하여 자기의 할일을 제쳐놓고 철저하게 계속적으로 희생, 헌신, 수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가서 너호이와 같이 하라. 즉 네가 그런 이웃이 되라고 그의 헛된 종교적야심을 지적하셨습니다.
자기 의(self righteousness)를 버리지 못한 자는 영생을 얻을 수도, 진정한 이웃이 될 수도 없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세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의 인도자로서 성경을 어떤 자세로 접근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읽어내는지 새삼 돌이켜 봅니다.
저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진정한 이웃, 예수님을 본 받아 저도 가서 이와 같이 하려고 도전합니다.
행여 찌질한 저의 저기 의가 들어날까 두렵사오니 날마다 저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기를 기도며 나아갑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와 같이 모든 순간 주님께서 제게 주시려는 귀한 것을 깨닫게 해 주십시요. 주님...
 .
* 아내와 함께 하는 매일 성경읽기외 기도가 저희의 생애 끝날까지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이번 주일부터 시작되는 영어예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장성진형제를 비롯하여 모든 참여자들이 주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홍민택님의 댓글

홍민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33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강도를 만나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던 여행객을 처음 발견했던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 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을지경에 이른 사람을 지나치면서 자기 정당화 (정결법)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죽어가는 여행객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한 마음, compassion) 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자기의 시간과 돈을 들여 이 여행객을 살리고 그가 온전해 질때까지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비 (mercy)를 보인 이 이방인이야 말로 진정한 이웃이라고 예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중요한 일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것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혼을 살리는것 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것만 같았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것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의 작은 뜻을 받들기 위해 하나님의 더큰 뜻을 저버린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 모습이 저의 모습이 될까 두렵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자비의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구원을 보장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율법교사는 질문했습니다.
당시의 고정관념을 깨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선한사마리아와 마리아의 비유를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지식의 덧 없을음을 산산조각 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마치 인본주의자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중요성을 알게됩니다. 하나님은 인본주의, 우리는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는 큰 그림을 보게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님의 시대가 된지 2천년이 넘은 지금, 그 복음의 의미가 변질, 왜곡, 실종되어 가는 것을 보며, 마라나타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 모든 죄를 사하시며 회복시키시는 그  일들을 교회, 가정, 직장에서 쉬지 않고 이어가길 기도합니다.

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오늘날 이땅에 있는 많은 선한 사마리아인 들에게 찬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나도 그들처럼 살기를 소망합니다.

손기일님의 댓글

손기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머리 속에 왜 이리 근심거리가 많은지, 하나를 생각하다 보면 또 다른 근심거리가 떠 오릅니다. 근심을 해도 별로 해결되는 것도 없는데, 머리 속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근심으로 혼란스러지기도 합니다.  마르다도 예수님의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머리도 몸도 분주히 움직였나 봅니다. 그런 언니의 모습에는 아랑곳없이 예수님 발치에 앉아 편히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마르다에게는 좋지 않게 보이고 예수님께도 서운한 듯 보이네요. 당시 무엇이 가장 소중한 지 생각을 하였더라면, 마르다도 간단히 대접 준비하고 함께 말씀을 듣기를 선택했을 텐데, 그 많은 근심이 그 소중한 말씀의 시간을 놓치게 했네요. 나는 지금 무슨 쓸데 없는 근심으로 현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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