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던지러 왔노라 [ 누가복음 12:49 - 1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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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09 22:10 조회 Read10,526회 댓글 Reply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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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말씀 듣기 해설보기(출처) English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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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58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심판대에 설 때 내 빚이 없길 소망합니다.
주님, 이 일을 어찌 이룰 수 있을까요. 오직 사랑의 빚 외에는 빚지지 말라하신 말씀 다시 되새깁니다.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52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화평을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12:4 )
물론 이 화평은 하나남과 죄인과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자녀들 간에 이루어질 천국의 평안을 뜻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화평"은 인간적인 화평 곧 인간끼리 혈연, 지연, 학연 인간관계에서 나누는 화평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관계성을 초월하는 새로운 관계성이 성립될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도 예수님 앞에서 포기해야하는 절대적인 영원한 관계성입니다.(눅 14:26)
- 예수님을 중심으로 구원 받은 자와 멸망하는 자가 확연히 나뉩니다.
-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간의 모든 인간관계는 포기되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부모자식간의 관계성과 같은 혈연관계가 신앙에 방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적인 결단을 해야할 때 혈연관계에 중점을 둔 나머지 인본주의로 빠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신앙적으로 타협하는 불신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것이 자식들의 문제와 연관계 되면 더욱 그러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저의 자녀 손들 모두 믿음으로 살게하셔서 그 안에서 화평을 이루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지 않고 멸망을 햐해 가고 있는 동기간들이 있어 마음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주님의 은혜의 때에 놀랍게 개입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도전합니다.
* 영육 간의 어려움으로 고통하는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성령님께서 저들의 인생사에 깊고 예리하게 간섭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평을 주려고 오신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지만 세상(죄, 불순종)과는 분쟁을 주러 오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세상도 얻으려는 욕심많은 마음을 읽지 않으셨나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죄와 아무런 부딪힘이 없는지, 분쟁이 없는지 그것이 이상하다고 하십니다.
가장 친밀한 가족사이에서도 이것은 일어나며 불가피함을 봅니다. 세상과의 타협속에서 나름대로의 왜곡된 믿음, 세속화된 신앙, 무분별한 신앙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죄와 탑협하거나 은닉하거나 즐기는 것을 다 회개합니다. 복음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부분에 있어서 더욱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도록 지혜를 구합니다.
- 성경말씀 읽기, 암송하기, 공부하기, 예배 준비, 헌금준비등 미리하기
손기일님의 댓글
손기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51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그냥 좋은게 좋은 거라며 그저 편히, 분쟁 일으키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중용이라는 말로 잘 포장되면 그럴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좀 불편해도 남을 따라 갑니다. 저도 보통 그러는 편이라 문제 없이 살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아내는 저와는 전혀 다릅니다. 다른 의견을 잘 냅니다. 저는 그런 아내를 너무 사랑합니다. 덕분에 제가 많이 변했거든요. 다른 의견, 분쟁이 없으면 변화도 없습니다. 누군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의문을 던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에수님은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에게 많은 의문과 도전을 했고, 그런 도전과 갈등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배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