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헤픈 사랑 [ 누가복음 15:11 - 1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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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17 22:26 조회 Read226회 댓글 Reply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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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이 짧은 말씀 예화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게됩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떠난 아들처럼 삶의 만족을 추구하며 이리저리 휩쓸리는 저의 인생과 중첩됩니다.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떠난 아들을 향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아들의 죄스러운 행동보다 아들 그 자체가 아버지에게는 큰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들의 우둔함을 억지로 막아서지 않았고 깨달아 돌아올 때 까지 기다린 아버지의 마음, 사랑으로 저 자신도 회개하며 돌아오게되었고 지금까지 떠날수 없는 큰 사랑안에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이와 같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가운데 고통과 절망을 헤어나오려는 간절한 몸부림을 오래참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인내는 사랑임을 배웁니다.
- 전도대상자를 위한 기도와 인내가 더욱 견고하게 하여주소서
- 건강회복이 필요한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받고 새힘 얻기를 기도합니다.
- 동부 폭설로 큐티교재 배송에 발생한 지연이 속히 해결되도록 인도하소서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흔히들 알고 있는 돌아온 탄자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 있는데 자기의 상속분을 억지로 받아내서 먼나라로 갑니다.
아버지의 간섭이 거북하고, 그 주권에 복종하기도 싫어서 아버지를 떠나서 제멋대로 살아보겠다는 심사입니다.
먼 타국으로 떠나간 작은 아들은 얼마 못가서 허랑방탕, 자유분방하는 삶으로 인하여 가진것을 당 탕진하고 거지가 됩니다.
결국 그 땅에서 돼지우리 지킴이가 되었는데 배가고파서 돼지의 사료를 먹고자하나 아무도 주지 않습니다.
부잣집에 사랑 받는 아들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돼지보다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 작은 아들은 양육강식의 죄악세상에서 제대로 사람대접도 못 받고 무가치한 인간으로 죽어가고 있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모든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인지라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유리방황하다가 죽어 지옥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탕자는 자신이 생각해도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무조건 용서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의 사랑을 비로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에 대해서 상한 마음으로 그가 돌아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결국 돌아온 아들을 끌어안고 지극한 사랑으로 영접하여 크게 환영하는 기쁨의 잔치를 벌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다시 자기의 아들로서 인정해 주며 그의 지위를 회복시킵니다.
아버지에게는 작은 아들이 아버리를 버렸다는 것, 재산을 탕진했다는 것, 창기와 허랑방탕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뿐입니다. 아버지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여기 이 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
그러나 탕자의 형은 아버지의 심정에 동참하지 않았으므로 동생을 악한 자, 부적격 자, 창기와 놀아나는 막장인생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는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분노하며 정죄함으로서, 아버지의 심정을 아프게하며 wet blanket 노릇을 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는 큰 아들도 작은 아들 못지 않은 탕자일 뿐입니다. .
이들은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계급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제가 육친의 아버지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탕자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게서 주신 이 말씀으로 제가 바로 이 탕자이었음을 깨닫고 통회하게 인도하신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용서의 사랑 때문에 저의 인생을 송두리채 드리기로 결단한 때가 생각납니다.
그로부터 49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저는 주님 보시기에 여전히 어린아이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품에서 신령한 생명의 말씀과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복의 근원으로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명을 위하여 헌신, 재헌신을 드립니다.
주님, 어서오시옵소서.
* 영어부 예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청소년, 대학 영어부놔 장성진형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겸손하게 주님 앞에 엎드리기를 기도합니다.
홍민택님의 댓글
홍민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큰아들의 비극
큰아들은 아버지와 늘 함께 있었고, 아버지의 모든것이 그의 것이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받은 복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고 살아 돌아온 동생에게 사용된 극소수의 비용으로 분을 냅니다. 아버지가 작은 아들만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만 돈을 쓰고, 그를 환영하는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살아 돌아온 동생으로 인해 기뻐하지 못하고 즐거워하지 못하는 참으로 딱한 큰아들입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죽은줄 알았던 작은 아들을 향한 아픔보다 함께 있지만 멀리 있는 큰아들로 인한 아픔이 더 클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큰아들은 끝까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리적으로는 아버지와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가장 멀리 있는 아들.
큰아들의 모습에서 저는 복음을 전하러 니느웨에 갔지만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 망하기만을 원했던 요나, 결국 하나님의 구원에 불만을 품은채로 끝나버리는 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이 모습이 저의 모습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받은 복의 소중함과 충분함을 알고 자족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작은 아들을 향한 순수한 아버지의 사랑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한분 만으로 모든것이 족한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정애님의 댓글
신정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나님 아버지 2017년 7월에 죽었던 저를 살리시고 주님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저를 용서하시고 다시 사랑으로 안아주셔서 자녀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하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족한 딸에게 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제게 차고 넘치므로 이 사랑을 전하기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