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7 요한복음 John 11:28 -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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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ate22-02-06 23:23 조회 Read11,224회 댓글 Reply6건관련링크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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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중심내용
예수님은 마리아를 만나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시고 죽음의 현실 속에 놓인 이들을 보며 함께 아파하시고 분노하십니다.
[ 요한복음 11:28 - 11:37 ] (찬송86장)
예수께서 마리아를 불러내시다
28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비통해하며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도움말
33절) ‘비통히’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뜻하는 단어이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극심한 괴로움을 뜻하는 매우 강한 표현이다.
[ John 11:28 - 11:37 ]
28When she had said this, she went and called her sister Mary, saying in private, “The Teacher is here and is calling for you.”29 And when she heard it, she rose quickly and went to him.30 Now Jesus had not yet come into the village, but was still in the place where Martha had met him.31 When the Jews who were with her in the house, consoling her, saw Mary rise quickly and go out, they followed her, supposing that she was going to the tomb to weep there.32 Now when Mary came to where Jesus was and saw him, she fell at his feet, saying to him, “Lord,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33 When Jesus saw her weeping, and the Jews who had come with her also weeping, he was deeply moved in his spirit and greatly troubled.34 And he said, “Where have you laid him?” They said to him, “Lord, come and see.”35 Jesus wept.36 So the Jews said, “See how he loved him!”37 But some of them said, “Could not he who opened the eyes of the blind man also have kept this man from dying?”
댓글목록 Reply List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나사로의 죽음 앞에 사람들은 슬퍼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죄의 댓가이며 인간의 한계입니다.
예수님 이러한 인생들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들의 슬픔에 동참하시는 예수님은 무엇인가를 하실 뜻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마리아의 말대로 예수님께서 계셨더라면 나사로의 병을 고쳐주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이 슬픔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이 은혜이며 소망입니다.
생명의 주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 언제나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에 예수님께서 계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계셔서 목마르던 여인에게 영원한 생수를 주셨습니다.
- 베데스다 못가에 예수님께서 계셔서 38년된 병자를 일으키셨습니다.
- 2만명이나 되는 군중이 굶주리던 광야에 예수님께서 계셔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의 처형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겨셔서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 나면서 부터 소경된 거지의 구걸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계셔서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이 삶의 현장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 영혼 속에 내주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리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과 함께 나의 남은 인생, last chapter를 살겠습니다. 주님, 마라나타!
신정애님의 댓글
신정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리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저는 마리아의 이 말이 주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하셨습니다. 그런 관계에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게다가 예수님께서 가까운 거리에 계셔서 소식을 전하면 빨리 달려 오실줄 기대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이틀이나 늦게 마르다 자매에게 오셨습니다. 저라도 인간적인 생각에 예수님을 원망헀을 겁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면 빨리 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지 ...하지만 예수님의 때를 기다려하함을 믿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를 믿음으로 믿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Miyoung Son님의 댓글
Miyoung S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앞에서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으러 문앞으로 뛰어나간것이 아니라 동구밖 까지 뛰어 나간듯 합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마리아까지 찾습니다. 당신의 발에 향유를 쏟아붓고 머리카락으로 그의 발을 씻겼던 마리아 입니다.
간절히 바라고 의지하는 그 자매의 믿음이 참 깊게 와 닿습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어도, 예수님은 그들의 주님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행보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지않는 님을 언젠가는 오실 약속 믿고, 헛된 마음 품지 않고 하루하루 나의 길을 갑니다.
황재랑님의 댓글
황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나사로의 죽음으로 아파하고 슬퍼하여 우는 나사로의 가족들과 유대인들을 보면서 함께 안타까워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 내가 알지 못하는 더 깊은 뜻이 있으시겠지만 다른 어느것 보다 그들과 함께 공감하시는 분이였음을 느끼게 됩니다 .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함께 공감하시는 주심이심을 또한 묵상해봅니다 . 어린아이나 어른에 이르는 모든 관계나 공동체 안에서 어떤 프로그램이나 활동이나 먹고 마시는 것 보다 정말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긍휼히 여김과 공감할 수 있는 내 마음의 자세가 먼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 요즘은 예전같지 않은 제 자신 스스로가 느끼게 됩니다 .제가 먼저 공감할려고 했던 마음들을 내려놓게 되고 포기해 버리고 작아져 있음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제 안에 담기를 원합니다 .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소서. 어린아이나 어른이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함께 공감할 줄 아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
손기일님의 댓글
손기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은 이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신의 능력을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을까? 그랬으면 좀더 여유롭고 태연했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감동하고 힘들게 했을까? 영어로 troubled라고 쓴 표현이 나를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나사로를 낫게, 아니 살아나게 할 것을 알았으면서도 무엇이 그를 괴롭게 했을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게 그 순간을 지나는 모습에 당신도 마음에 힘이 들었을까? 나도 누군가가 힘들어 할 때, 괜찮아 질거야, 내가 해결해 줄게 라고 말하기 전에 그 순간을 그와 함께 같이 힘들어 하며 함께 울 수 있을까?
홍민택님의 댓글
홍민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35 Jesus wept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영어 성경에서 가장 짧은 문장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 앞에서, 마리아와 사람들이 울고 있는것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유가족들을 위한 위로의 눈물, 스스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수 없는 인간의 한계, 구원의 소망이 없었던 이들을 향한 눈물이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고 어떤 사람들은 소경을 고친 이가 죽은 이는 고칠수 없는가 하며 조롱의 말을 보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원망섞인 말, 조문객들의 조소와 불신 등은 예수님이 어떠한 일을 하시기 전에 미리 내려버린 성급한 판단이었습니다.
성급하게 부정적인 결론을 내고 쉽게 단정 지어버리는 것 또한 믿음의 부족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기다릴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