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세미나 강의 자료, 교사를 위한 영성훈련, 교사의 영성 [출처] 교사 세미나 강의 자료, 교사를 위한 영성훈련, 교사의 영성|작성자 빛마음 > 아동부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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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동부 소개

- 예수님이 맡겨주신 아이들을 지적, 영적, 사회적, 육체적 (요2:52)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돕고 섬깁니다.
- 대상 : 영유아 |  유치부(Pre-K) | 유년부(K – 3G) | 초등부(4G- 6G) 
- 예배시간 / 담당부장 / 교육 내용: 주일 오전 10시 / 백ㅈH종 집사 / 가스펠 프로젝트  

2. 주일학교 비전: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글로벌 지도자의 전인적 토대 마련

복음에 기반한 성경적 세계관 정립 | 다중문화와 언어에 장벽이 없는 신앙관 정립 | 복음전파를 위한 재능을 키우는 가치관 정립

3. 교육 방향

신앙에 흔들림이 없는 기본적인 핵심 신앙을 심어주는 교회 |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주어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교회
부모와 함께 예배와 묵상시간 기회를 자주 갖는 교회 | 세상의 죄로부터 보호하고 적극적인 말씀 중심의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

4. 2024년 아동부의 표어 :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어린이

5. 가스펠 프로젝트 자료실

 

 

아동부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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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3-25 12:04 조회 Read266회 댓글 Reply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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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위한 영성훈련 / 들어가는 말
  “한 주 동안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학생들 앞에 서기 두려워요.”
  “내가 영적으로 살아있지 못한데 어떻게 ···”
  “내 모습이 부족하여 부담감이 커요.”
  “너무 삶에만 쫓겼어요 ···”
  “하나님과 학생들을 속이고 있을 뿐 아니라 나 자신마저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교사들이 이런 비명을 지른다. 필자는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표현은 다르지만 이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겸손인가? 자기 고백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일학교 교사가 어떻게 이렇게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여기는가?  어떻게 생활했기에 이러한 자기 평가를 하였는가 하고 비판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것이 대부분의 교사들의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심정을 매주 혹은 자주 느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교사 자신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교사사역은 기교적인 일이 아니다. 교사사역은 영적인 사역이다. 영혼을 돌보고(care) 양육하여 영적으로 치유하는(cure) 사역이다. 그러므로 교사가 영적으로 자신을 관리하고 기도의 능력과 사랑으로 무장하는 것이 교사사역의 요체라 할 수 있다.

교사의 영성훈련의 지침

1. 먼저 자신의 영혼을 위해 훈련하라

    교사 자신도 한 영혼임을 기억하라.  흔히 교사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내가 교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교사는 거룩해야 한다, 교사는 매일 말씀묵상을 해야 한다, 교사는 영적으로 깊어야하고 능력도 있어야 한다, 성경공부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새벽기도회도 출석해야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학생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등이다. 물론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에 대한 기쁨과 사명에 대한 자각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당위감과 의무로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멍에가 된다. 이런 태도는 복음적이 아니다.  율법주의적 부자유함과 바리새적 위선으로 고통당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 영혼의 목자가 아니라 교사로서의 역할 게임에만 몰두할 위험도 내포되어있다.

    교사는 남을 가르치기 자 이전에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있는 연약한 영혼이다.  교사로서의 역할 이전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절실한 존재이다. 교사로서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즉 교사의 교사됨은 자신의 신앙인격과 영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먼저 자기 영혼이 잘되고(요삼 1:2)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딤후 2:15).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 영적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기가 살기 위하여 자신이 영적 삶이 능력있고 즐겁게 하기 이해서 훈련하여야 한다.

2.  일상생활이 중요하다.

  교사의 자기관리의 요체는 그의  생활영성에 있다. 평소의 생활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교사로서의 자기확신과 능력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결코 교사 사역을 위해 주중에 몇시간을 따로 떼어내어야 확신과 힘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교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면 특별한 경건훈련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즉 교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한 인격으로 성실한 하루하루를 살아드리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필자의 말을 오해하지 말라. 기도가 필요없다거나 성경연구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일상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열심히 살 때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찾고 잘 믿었다는 고백이다. 동시에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고 잘 믿을 때 열심히 생활하였고 삶의 성과뿐 아니라 보람도 누렸다고들 한다. 동시에 교사들도 비슷한 고백을 한다.  “이번 주간에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더 열심히 기도했고 아이들에게 전화연락도 세밀하게 했어요.”

    그렇다, 이것이다. 삶에 충실했느냐, 생활을 하나님께 드렸느냐, 바로 이것이 교사의 자기관리와 훈련의 바로메터인 것이다.

3. 영혼을 향한 사랑이 솟아나게 하라

    교사의 모든 사역은 학생들을 향해 있다. 즉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데 흔히 목적과 수단, 그리고 주객(主客)이 전도되어 교사의 마음 속에 영혼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온갖 일에 생각으로만 가득할  수 있다. 영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메말라 버리고 일에 대한 부담감만 가득한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교사의 심령속에  영혼들에 대한 생각이 사그러지고, 영혼사랑이 뜨겁지 않다면 그것은 위기이다. 하나의 경종으로 보아야 한다. 영적 침체의 대표적인 징조이다. 사역을 일로서가 아니라 영혼을 위한 창조사역으로 이해하라. 일이 아니라 사람을 지향하라. 학생들이 정말 소중한 영혼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들을 향한 불타는 사랑이 솟아나는 것, 이것이 영성 훈련의 열매인 것이다.

4. 지속적으로 훈련하라

  영적훈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떠한 프로그램이나 방법으로 훈련하든지 지속적으로 하여야한다는 것이다.  영성성장은 단기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예/금식기도, 특별새벽기도회 등),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훈련을 통해서 균형잡힌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지속성이 없이 깊어지지 않고 내면화되지않는다.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포기하지않고 일정기간 지속하라. 가능하면 매일 매일 자신을 훈련하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여 이 사간이 자장 즐거운 시간이 되게 하라.

5. 개인적인 훈련과  공동체적인 훈련을 병행하라
 
  기독교 영성은 공동체적인 영성이다. 그러므로 갸인적인 훈련과 공동체적인 훈련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 몰두하면 주관적 체험으로 ㅃ쩌질 위험이 크며, 공도체적인 훈련에만 의존하면 공허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개인훈련과 함께, 주기적으로 공동체의 영적 모임에 참여하여 훈련과 나눔을 가져야 한다. 특히 뜻을 같이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훈련의 보조를 맞춘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영성훈련의 실제

  영성훈련을 하나의 프로그램이나 방법론으로 이해할 때 영성의 왜곡이 시작된다.  영성훈련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태도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영성적 성장은 올바른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피조세계와의 관계를 내포한다. 이러한 관계성을 깨닫고 발전시키는 데에 영성훈련의 요체가 있다고 하겠다. 여기 훈련의 실제에 있어서는 집단적, 열광주의적 영성전통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정적인 개인적 훈련을 중점적을 다룬다.

1) 말씀 묵상

  성경읽기와 묵상은 영성훈련의 기초이다. 성경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연구도 중요하지만 영성을 살리는데는  성경본문을 읽고 이를 체화하는 묵상의 길이 필수적이다. 성경묵상은 통독이나 속독과 다르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명상과도 다르다. 묵상은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그 말씀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가장 전형적인 묵상의 방법은 성경을 읽으면서 영감을 주거나 마음에 이끌리는 짧고 단순한 말씀을 정하여 반복적으로 읽으며 묵상하는 것이다. 본문은 결코 길지 않는 것이어야 하고, 읽을 때에도 천천히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성령의 조명을 기다리며 반복적으로 말씀을 공명시킨다.  묵상은 지성이 동원되는 분석적인 작업이 아니라 마음과 몸 전체로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내면화 작업이다. 묵상하는 그 본문의 표현을  짧은 기도문으로 변형시켜서 기도로 묵상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 된다. 시편의 본문, 복음서의 에수님의 말씀, 요한서신의 글, 중요한 성경 요절 등이 좋은 텍스트가 된다. 아울러 성경 속의 기도문, 희망을 주는 약속의 말씀, 묵상자의 실존에 연결되는 말씀을 찾아 묵상하는 것도 좋다.

  특히 매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사에게 이 훈련은 가장 중요하다. 공과 교수활동이 교사사역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교재와 교과과정, 자료들이 있겠지만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교사는 때에 따라 성경교수를 위해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익히 아는 상식이기도 하지만 가장 실천하기 힘든 것이 바로 교사의 말씀묵상생활이다. 먼저 자신에게 적용되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 열매가 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공과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성경읽기와 묵사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하여 성경에 대한 지식과 확실한 이해를 통하여 성경교사로서 전문적인 자질을 가여야 할 것이다.

2) 고독훈련(홀로있음의 영성)

  피동적인 소외는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지만 자발적인 고독은 진정한 관계를 회복시켜 준다.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홀로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수도사들은 고독의 훈련과 체험을 통해 깊은 영성에 이르렀다. 성경 속의 모세나 엘리야, 세레 요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예수님 등은 모두 광야에서 고독 가운데 거하였다. 광야의 훈련, 홀로있는 시간과 공간, 바로 거기에서 깊이 있는 자기 성찰을 하고 초월성의 경험을 하게 된다. 때로는 모든 일을 젖혀두고 산이나 자연,  빈 교회나 고요한 수도원, 한적한 공원에 머물면서 기도와 묵상에 잠길 때 영적 활력을 얻는 것을 경험한다. 하루 일과 중에서도 10-30분 정도 홀로 있는 훈련을 하며 이를 즐거워할 때 참된 자아와 만나고 하나님 체험의 깊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홀로있는 곳은 기실은 고독의 자리가 아니라 진정한 만남의 자리인 것이다.

3) 침묵

  고독이나 침묵은 결코 소극적이거나 종교적인 신선놀음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의 세계로 나아가는 적극적이 참여이다. 고독과 침묵, 양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침묵은 내적인 고요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고독이 외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침묵은 내적 환경을 만든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침묵이란 하나님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침묵훈련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입을 닫는다고 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처음 침묵훈련을 해보는 사람은 비록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지껄이는 혼란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다. 생각 자체가 말(언어)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침묵은 금언(禁言)이 아니라 내적 침묵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침묵이란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다.”

4) 기도

  우리나라 신앙전통에서 기도라고 할 때 주로 어떤 소원을 말하고 응답받는 것을 추구하는 청원기도를 뜻한다. 이는 성경적 기도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기도의 본질적 차원이 결여된 청원기도 일변도의 영성은 천박한 기복신앙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기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고 사랑하기라고 할 수 있다.

  영성훈련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현존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침묵 또는 사랑의 고백, 찬양고 감사를 통하여 깊은 사랑에 잠길 때 영적 생명력을 은총으로 받게 된다. 어떤 내적인 능력이나 감정적 평안을 얻는 것이 기도의 목적은 아니지만 그것이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기도훈련에 있어 특히 중보기도를 강조하고 싶다. 경험해 본 자는 알겠지만 중보기도는 기도의 문을 열어주고 기도에 힘을 더하여주는 놀라운 차원이 있다. 필자는 이것이 영혼을 향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쉬지말아야 한다.  교사는 중보자이다. 어린 영혼을 하나님과 만나게 하는 중보자로서 부름받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셨다. 교사 사역의 본질은 중보의 사역이다. 행정이 아니다. 의례적인 관리도 아니다. 그저 열심히 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저절로 탄생할 수 없다. 중보자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있어야 한다. 교사는 어린이 한명 한명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 중보기도의 눈물의 분량만큼 열매 맺는다는 것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기도의 골방에서도 기도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서도 기도하고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속으로 기도하라. 그러면 길이 열리고 해답을 얻고 섬길 힘도 넘쳐난다. 동료 교사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하라.

5) 노동(노동의 영성)

  수도사들은 보통 노동을 하면서 묵상을 하였고, 따라서 노동을 하면서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는  단순한 노동이나 예술적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영성수련의 방법으로서의 노동만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를 통해 영적 활력을 얻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일하시 하나님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안식을 주시면서 엿새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고 하셨다. 노동은 거룩한 소명이다, 직업도 그러하다.  비록 현실의 경제구조 속에서 노동의 소외가 있으며 일의 성격상 노동 자체가 고통이 되고, 창조성이 결여된 작업이 대부분인 질곡이 있지만, 땀흘리며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의 영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생활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바치는 영성이 노동의 영성이 지향하는 기본 태도이며 방법이다.

6) 섬김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그를 돕고 섬기는 것이다. 섬김에는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영성과 남을 높이고 자신은 낮아지는 겸손, 그리고 타인을 행한 긍휼과 자비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내면적 자질을 기초로 올바른 섬김이 가능하며 동시에 섬김이 훈련을 통해 이러한 인격이 배양되고 성숙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이 발을 씻기신 모범처럼 남의 발을 씻기는 영성, 세리와 죄인들과 한 밥상에서 먹고 즐기신 용납과 연대성의 영성, 착한 사마리아처럼 강도만난 사람이 있는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고 두 다리 뻗고 편히 잠들 수 없는 영성이 바로 섬김의 영성이다.  그러므로 섬김이란 단순히 신앙공동체 내부의 봉사만을 의마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이웃과의 하나됨이며, 그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섬김은 참여와 나눔이라고 할 수 있다.

7) 청빈

  마음의 가난은 삶의 단순성으로 이어진다. 청빈은 영성적 삶의 가장 기본되는 요소이다. 청빈은 궁핍을 의미하거나 가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빈주머니 맨발로 선교여행을 다녔다.  아무런 재물도 축척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시면서, 일용할 양식의 진리를 설파하셨다. 자발적인 가난과 단순성은 영적 훈련의 가장 심오한 토대가 된다. 청빈은 무소유의 정신을 포함하지만 기계적인 무소유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이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가장 필요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청빈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뜻하며, 이를 통해 재물과 세속적 욕망과 소유로부터의 자유하게 한다. 청빈한 생활, 소박한 식사, 단순한 생활 가구, 구제와 나눔은 청빈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된다.

8) 예배와 성례

  신앙공동체의 예배와 성례전은 기독교 영성의 원형적인 통로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첨여와 일치이다. 특히 성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게하고 아울러 공동체의 함 몸되게 함의 표상을지니고 있다. 예배를 통한 찬미와 경축, 기도와 말씀강론, 성례전적 은총을 통해 영성이 공동체적으로 자라게 된다.

9) 공동생활

  공동체는  영성훈련의 밭이다. 기독교 영성은 은둔자나 수도자가 독수도하는 영성이 아니라 공동체적 영성이다. 공동체 속에서 공동체를 통하여 공동체와 자신이 함께 자란다. 특히 특수한 은사와 비전을 지님 사역공동체나, 함께 생활하는 생활공동체의 경험은 영성훈련의 탁월한 장이 된다.

10) 경건 서적 읽기

  좋은 책을 읽은 것은 영성훈련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기독교 영성서적, 각종 기도문, 영적 지도자의 강론이나 아포리즘 등이 사용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수집광적으로 책을 사모으는 것이나 대충 정보를 수집하는 식으로 읽고 지나가는 것은 도움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영성서적은 조금씩 묵상하며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11) 생명 사랑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다. 창조질서의 보전이라고 고백되는 이 활동은 그  체가 하나의 운동이지만 영성훈련의 길이 된다. 자연보호, 자연가꾸기를 위한 구체적인 제 실천활동을 창조질서의 보전과  생명사랑의 정신으로 내화하면서 실천하는 것이다.

[출처] 교사 세미나 강의 자료, 교사를 위한 영성훈련, 교사의 영성|작성자 빛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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