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주일설교 "탕자의 심정" > 설교모음 Sermons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설교모음 Sermons

11.11 주일설교 "탕자의 심정"

페이지 정보

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10 18:26 조회 Read1,859회 댓글 Reply1건

본문


ㅇ 제 목 : 탕자의 심정
ㅇ 설교자 : 이아브라함 목사
ㅇ 본 문 : 누가복음 15:11-24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11. Jesus continued: "There was a man who had two sons.
12. The younger one said to his father,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estate.' So he divided his property between them.
13. "Not long after that, the younger son got together all he had, set off for a distant country and there squandered his wealth in wild living.
14. After he had spent everything, there was a severe famine in that whole country, and he began to be in need.
15. So he went and hired himself out to a citizen of that country, who sent him to his fields to feed pigs.
16. He longed to fill his stomach with the pods that the pigs were eating, but no one gave him anything.
17. "When he came to his senses, he said, `How many of my father's hired men have food to spare, and here I am starving to death!
18. I will set out and go back to my father and say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19.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make me like one of your hired men.'
20. So he got up and went to his father.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21. "The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22.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Quick! Bring the best robe and put it on him. Put a ring on his finger and sandals on his feet.
23. Bring the fattened calf and kill it. Let's have a feast and celebrate.
24. For this son of mine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So they began to celebrate.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Reply List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주후 2019년 11월 10일 누가복음 15:11-24  "탕자의 심정"

Copernicus적 전환...
코페르니크스는 천동설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서 큰 파장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 어떤 기존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고 완전히새로운 발상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하늘이 땅을 중심으로 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는 땅이 하늘을 중심으로 돈다는 혁명적인 이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중심축이 바뀐 것이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 신앙을 비롯하여 기존의 모든 이론들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대 변혁과 전환이 일어난 것은 물론이다.     

지금부터 2천년전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과연 대변혁이었던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이어지던 율법적 신앙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큰 파문을 일으키신 것이다. 이에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문제가 생겼다. 안식일을 규정을 무시하고,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선포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그야말로 그 인생 속에 대 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세리 혹은 죄인이라고 분류되던 사람들과는 한자리에 앉지도 않을 뿐더러, 더구나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함께 하심으로서 당시의 전통을 정면으로 거스렸던 것이다. 이일로 인하여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거세게 비난했다. 이때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어떤 부자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자기의 상속분을 미리 달라고 했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았다. 그는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지극히 악한 불효자이다. 그는 아버지의 주권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못하서 그는 허랑방탕하면서 그 모든 재물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돼지를 치는 곳에서 돼지먹이로라도 연명하려했으나 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를 떠난 그 자식은 돼지 보다도 더 가치 없는 인생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로부터 떠나서 스스로 자유롭게 살고자, 자기중심적인 삶을 위하여 아버지를 떠났으나 결국은 지극히 부자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결국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드릴 아주 멋진 반성문을 준비한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하였으니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종의 하나로 보소서…

그가 아버지 집에 가까이 왔을 때 아버지는 거지가 된 아들을 알보고 측은하게 여겨서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아버지는 이 죄인인 불효자를 무조건를 무조건 것 사랑으로 받아준다. 아들은 준비 된 반성문을 아버지 앞에서 외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반성문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종들에게 명령한다.
-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 발에 신발을 신기고,
-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 살진 송아지를 잡고 파티를 하자…..

아버지는 탕자의 과거에 대해서는 일체 문제삼지 않고 성대한 환영파티를 열어 환영하며 그를 아들의 위치로 회복시켜 준다. 물론 탕자는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없는자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이 그를 온전히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탕자가 집에 돌아와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기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용서의 은혜, 상상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아ㅡ 나는 값없이 용서 핟은 자이다. I am a forgiven sinner.
내가 왜 이토록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몰라 뵈었던가?
이제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 살아야지…
그에게 과연 대전환이 일어났을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아버지 중심의 삶으로 인생의 축이 전환되었을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이제 그는 아버지의 주권 아래서 완전한 자유를 얻었던 것이다.

본문의 탕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떠나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이 세상 죄인을 상징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유로운 것 같으나 실은 부자유한 노예가 된다.

아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의 계명을 지키는 한 에덴 동산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여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그는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다. 그후 그의 삶은 자유한가? 그는 저주 받은 땅에서 일생동안 땀흘려 일하는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의 모든 환경이 그를 지배하였다.
지금도 수많은 이 세상 죄인들이 삶의 노예, 죽음의 노예, 마귀의 노예로서 그런 줄도 모르고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여하심이니라. (요 3:16)
 
예수님 께서 이 세상 죄인들을 향하여 선포하신 구원의 멧세지이다.
탕자와 같이 이 세상에서 죄 가운데서 부자유하게 사는 인생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기다리신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무조건적으로 받아주신다는 사랑의 선포이다. .  .

내가 처음 주를 만난 날에 대해서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다.
47년전 성경공부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그가 세상 죄인들을 사랑하심을 깨닫고, 그가 탕자와 같은 죄인인 나를 사랑하심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나 자신도 포기했던 나를 포기하지 않고 도리고 사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통해서 나는 나의 존재가치를 꺠닫고 비로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도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다. 하나님 제가 감히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 결과 내 인생에 대 변혁이 일어났던 것이다.
- 예배드리는 것이 감격스럽고,
- 찬양을 드리면 감사의 눈물이 솟구치고...
-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고,
-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나를 나타내고 싶고...
- 이런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고…...
-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로 나의 인생을 헌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귀한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살까?
하나님께서 창세기 12:1-3 말씀으로 나에게 도전해 오셨다.
그렇다.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코페르니크스적 대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나 중심으로 돌아가던 인생이 하나님 중심의 인생으로 바뀐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것이 뒤바뀌면 웃기는 것이다.
말이 마차를 끌고 간다. 말이 동력의 원인이고 마차가 가는 것은 결과이다.
이 순서를 바꿔보자 마차를 앞에 놓고 말을 뒤에 매달아 놓아보자 어떻게 되겠는가?
순서만 바뀌었을 뿐 말과 마차는 여전히 같이 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을 생각해 보자...
교회에 열심히 다니다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가?
마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시조)를 읊게 되는걸까?

예배에 습관적으로 참석하여 교회생활에 익숙해 지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교회생활을 통해서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임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3년동안을 같이 동고동락하던 가룟.유다를 생각해 보자. 그는 전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도리어 예수님의 배반자가 되지 않았는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믿음에서 실패한 베드로에게 질문하신다.
다른 제자들과 가룟유다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다른 제자들 모도 실수가 많고, 주님을 배반하고... 그렇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키고 재헌신하였다. 그러나 가륫유다는 예수님을 사랑하시 않았다. 주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자기 중심을 버리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을 무가치한 인간으로 하나님을 참칭하는 사기꾼으로 봤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돈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 ...
.
한 예를 들어보자.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리고 씻어드렸다.
그때 가룟유다는 마리아를 책망했다.
그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것이 더 좋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책망은 마리아에게가 아니라 실은 예수님에게 한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저렇게 낭비하는 것을 즐기고 있단 말인가?
뭘 그런 뜻이다. 그에게 예수님은 다른 사람과 똑 같이 물로 발을 씻겨 주면 될 정도의 인간에 불과 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예수님은 그에게 돈 만큼도 소중한 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의 내용을 돌이켜 보기를 바란다.
-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 당신은 베드로와 같은가, 아니면 가룟 유다와 같은 가?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믿음에서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 그 세상에 있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으로만 알 수 있다.

로마서 10:17 을 읽어보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경을 듣고 배우는 것이 먼저이다. 거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는 것이 믿음을 가지는 유일한 길이다.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꺠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 결과로 예배, 찬양, 헌신, 사역에 기쁨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탕자의 심정; 그젓은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 값없이 용서 받은 자의 심정이다. 
이제는 주님의 품에 계신 나의 목사님이신 김동명목사님은 "탕자의 심정"을 그리스도인의 차려자세라고 가르쳐 주셨다. 군인은 무엇을 하던 "차렸자세"로부터 시작한다.
차렸, 경레, 차렸, 앞으로 가. 차렸. 총검술 시작, 차렸, 돌격......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탕자의 심정"으로 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탕자의 심정이란 탕자를 받아주신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에 기초한 삶이다.
- 탕자의 심정으로 예배 드리고..
- 탕자의 심정으로 헌금을 드리고…
- 탕자의 심정으로 마당을 쓸 때도, 화장실을 청소하고…
- 탕자의 심정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
- 탕자의 심정으로 성도들의 이삿짐을 날라주구
- 탕자의 심정으로 모든 비난과 멸시를 받아 들이고…
- 탕자의 심정으로 모든 억울하고 분하고 죽고싶은 환경을 극복하고..
- 탕자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다시 일어서고

탕자의 심정은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와 겸손과 사랑과 은혜와 시험을 이길 능력의 원천이 된다. “나는 값없이 용서 받은 탕자이다.” 라는 고백은 과연 인생의 대전환의 원동력이 된다. 
“하나님, 저는 값없이 용서 받은 탕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없이 나의 죄를 위해서 죽어셨으니….”
“저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당할 수 있고 해야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탕자의 이름은 “이 아브라함 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과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의 점검과 회개가 그 핵심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도들을 위한 기도 이외에 무엇인가 나를 위해서 구하는 기도를 좀처럼 잘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내게 주신 것이 차고 넘친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탕자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라. (딤전 6:8)
그래서 저는 목회를 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이토록 영광스러운 주님의 사역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자랑스럼고 감사한지 알수 없다.
나는 지난 37년의 목회생활가운데 지금처럼 호화롭게 산 적이 없었다. 탕자에 불과한 우리들에게 너무나 넘치게 주셔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때로 아내에게 물어본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살아도 되는걸까?”
 
성경말씀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나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탕자의 심정으로 하라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돌아온 탕자로서 나의 인생의 중심구절은 갈라디아서 2:20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은 나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인생의 축이 전환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탕자의 심정이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교회소개 About Church 개인정보취급방침 Privacy Statement 서비스이용약관 Terms of Service Copyright © jiguchonchurch.org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o top

Southern Baptist Convention Arizona Global Baptist Church
536 E. Fillmore St., Tempe, AZ 85288 / T. (48O) 442-732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Mobile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