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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주일 설교 "찾아 오시는 하나님, God who Comes to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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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2-20 14:29 조회 Read1,549회 댓글 Reply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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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 목 : 찾아 오시는 하나님, God who Comes to Us
ㅇ 설교자 : 이아브라함 목사, Rev. Lee
ㅇ 본 문 : 요한복음 Jn 3:16-22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침례를 베푸시더라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7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in order that the world might be saved through him.
18 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i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the only Son of God.
19 And this is the judgment: the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and people loved the darkness rather than the light because their works were evil.
20 For everyone who does wicked things hates the light and does not come to the light, lest his works should be exposed.
21 But whoever does what is true comes 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clearly seen that his works have been carried out in God.”
22 After this Jesus and his disciples went into the Judean countryside, and he remained there with them and was bapti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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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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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0일 성탄주일예배 요한복음 3:16-22 “찾아오시는 하나님”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재림하시기 위한 거룩한 계획을 가지고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대로 허나님께서 계획하신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과 승천에 이르기까지 모두다 이루어지고고 이제 재림 하나의 사건만 남은 마지막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성취되었듯이 주님의 재림 또한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준비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강림하시리니...“ (살전 4:16) 라고 예정된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예언을 믿고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천년전 막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 그분을 메시야로 알고 맞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는가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을 때, 당시 헤롯왕과 온 백성들이 모두 소동했다고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재림의 나팔소리가 날 때 온 세상이 이와 같이 소동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준비되어야 합니다. 오늘, 내일 아니면 우리의 생전에 주님은 재림하실 것이라는 긴박감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 1:3)

우리 하나님은 창세로부터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죄의 현장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은 죄를 짓고 수치와 두려움으로 나무숲 속에 숨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동산에 거니시면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무참하게 살인한 그 현장에 찾아오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는가? 라고 물으셨습다.

왜 찾아오셨을까요?
죄를 책망하고 벌을 주시려고? 찾아오신 것일까요?
그 해답은 오늘 본문 요 3:17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아담과 화와 가인을 찾아오셨던 하나님은 그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셔서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을 통해서 보니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 성전의 언약궤에 계셨던 하나님
아담의 죄로 인하여 온 인류가 멸망의 운명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대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고통당하던 이스라엘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출애급기 3:7-8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내가 내려가서...“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하도록 도우시고 광야에서 그에게 성막을 만들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성막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상징하며 하나님은 거기서 백성들을 만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출애급기 25:20-22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셔서 성막을 만들게 하십니다. 성만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궤 또는 언약궤이며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돌판이 있습니다. 이 언약궤는 성막의 가장 안쪽에 지성소라는 곳에 있으며 거기를 회막(the tent of meeting)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백성을 대표하여 피를 들고 온 제사장을 만나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도로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위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출 40:34-35)

이 성막은 나중에 솔로몬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성전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드디어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이곳에 계심을 증명한 것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삶의 중심이 되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열왕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대부분의 왕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서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퇴락하기도 하고 우상의 전과 같이 변질되기도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 때에 비로소 언약궤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역대하 35:2-3
2.  왕이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직분을 맡기고 격려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3.  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


* 사라진 언약궤
언약궤는 성전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게속적으로 범죄하였음으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시려는 결정을 하셨습니다. 바벨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여 예루살렘과 성전을 완전히 파고하고 불태워 없애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많은 백성들과 성전 안에 있던 모든 성물들은 다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때부터 언약궤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언약궤는 어디로 갔을까요?

-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제사장들이 옮겨서 어딘가 숨겨져 있다.
- 솔로몬과 스바 여왕사이에서 난 아들 메네릭이 진짜 언약궤를 가지고 가서 이디오피아 땅
  어딘가에 숨겨 놨다.
- 이제 예루살렘에 제 3성전을 건축할 때를 대비해서 숨겨져 있다. 등등

몇가지 설들이 있지만 신빙성이 없습니다. 비성경적,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바빌론 군사들이 성전을 파괴할 때 언약궤를 발견했을 것이고 그것은 그들의 눈에는 금궤짝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금덩어리인줄 알고 속을 보니 무거운 돌 판만 들어 있으니 내어 버리고 상자만 가져갔을 것입니다.

언약궤의 힘이 없어졌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언약궤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죽고, 만진 자는 비록 좋은 의도였지만 즉사하는 무시무시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일까요?
하나님이 떠난 언약궤는 이미 하나님과 상관없으므로 의미도 능력도 떠난 것이 아닐까요?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시고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성전과 언약궤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차라리 없애 버리셨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언약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후에 다시는 성경에 기록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3: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도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스룹바벨의 지휘로 성전을 재건한 이후에도 언약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성전 재건을 완성한 후에도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곳은 언약궤가 없는 성전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역사 속으로 그대로 사라져간 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배받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사 66: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순교자 스데반 집사는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와같이 해석했습니다.

행 7:48-50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성전과 그 속에 있는 언약궤로 상징 되던 하나님의 임재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소위 성전이라고 하는 곳에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그곳은 장사하는 집이며 도적의 소굴에 불과 했습니다.
거기는 언약궤가 없는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껍데기 성전에 불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당시에는 제자들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2:21-22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의 육체를 가치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 예수님 속에 계신 하나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나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그 이름을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이 말씀은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제 손으로 지은 성전, 언약궤가 사라진 가짜 성전은 없어지고 진짜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부터 2천년전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광야에서 성막이라는 텐트에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계셨고 그리고 마지막 때에 예수라는 하나님의 아들 속에 계시며 어린 아기의 모양으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 가운데 온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대신하여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구원 받을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던 것입니다.(눅 23:44-45, 막 16:38-39, 마 27:50-51)  성소의 휘장으로 가려졌던 것은 연약궤를 모시기 위한 것이었으며 또한 죄인이 언약궤를 직접 보거나 만지면 죽음을 당하기 때문에 휘장으로 가리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휘장이 찍어져 열리고 보니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휘장은 마치 언약궤가 없는 것을 감추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언약궤가 없는 이성전은 가짜이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열리니 모두 다 들어났습니다. 거기에 언약궤는 없었습니다. 그곳에 반드시 있어야만하고, 있다고 믿었던, 아니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있다 하자고 서로 묵계하던 침묵의 본색이 들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은 장사꾼의 집이라고 매도하셨던 성전의 속살이 완전히 들어난 것입니다. 그곳에는 언약궤가 있어야할 자리에 표지석만 있었다는 전설이 있을 뿐입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셨고, 동생을 참혹하게 죽인 가인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의 현장에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 동인한 하나님께서 이 좌악의 땅 죄인들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오늘날 이 죄 많은 세상에 선과 악의 구별이 불분명한 혼돈 가운데 인간들을 여전히 죄를 반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죄를 미화하는가 하면, 하나님을 능멸하는 것을 개성이라고, 표현의 자유라고 하나님께 고의적으로 도전하는 두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천년전 이 죄악의 땅에 어린 아기로 찾아오셔서 말구유에 뉘이신 예수님을 그려보며 마음에 슬픔 같은 짠~ 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때가 되매 우리들 각자의 인생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마굿간 보다도 더 더러운 죄인의 인생을 더럽다 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십자가의 피로 말끔히 씻어주셨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분은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가운데 있었던 성막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이천년전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저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함께 이룬 교회 속에 계십니다. 믿습니까? 확실합니까?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이후 행방을 감춘 언약궤는 이렇게 살아계신 성전인 예수님으로 우리 앞에 영원히 계십니다.
언약궤가 없는 성전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외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계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의 머리속에 지식으로 있으면 역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으로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고 계실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For God so loved the world...
거룩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 주셨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다니....
다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깨닫도록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려 헌신의 결단을 드릴 뿐입니다.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천년전 성탄에 이 땅에 찾아 오셨으며, 우리 각자의 인생에 찾아오신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야하겠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우리의 도움이 팔요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들, 우리가 용서 받아야 할 사람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 나로 인하여 상처 받은 사람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2천년전 성탄에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임마누엘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성령님으로 찾아와 계신 임마누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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