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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1.주일설교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 I Must Pres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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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1-31 15:46 조회 Read1,248회 댓글 Reply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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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 목 :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 I Must Press on
ㅇ 설교자 : 이아브라함 목사, Rev. Lee
ㅇ 본 문 :누가복음 Lk 13:31-35
1. 누가복음 13:31-35
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31 At that very hour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Get away from here, for Herod wants to kill you.”
32 And he said to them, “Go and tell that fox, ‘Behold, I cast out demons and perform cures today and tomorrow, and the third day I finish my course.
33 Nevertheless, I must go on my way today and tomorrow and the day following, for it cannot be that a prophet should perish away from Jerusalem.’
34 O Jerusalem, Jerusalem, the city that kills the prophets and stones those who are sent to it! How often would I have gathered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brood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35 Behold, your house is forsaken. And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2. 누가복음 6:27-28
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6:27 “But I say to you who hear,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28 bless those who curse you, pray for those who abuse you.

3. 누가복음 9:23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9:23 And he said to all,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4. 사도행전 20:22-24
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0:22 And now, behold, I am going to Jerusalem, constrained by the Spirit, not knowing what will happen to me there,
23 except that the Holy Spirit testifies to me in every city that imprisonment and afflictions await me.
24 But I do not account my life of any value nor as precious to myself, if only I may finish my course and the ministry that I received from the Lord Jesus, to testify to the gospel of the grace of God.

5. 이사야 40:26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40:26 Lift up your eyes on high and see: who created these? He who brings out their host by number, calling them all by name; by the greatness of his might and because he is strong in power, not one is missing.

6. 시편 147:4
147: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147:4 He determines the number of the stars; he gives to all of them their n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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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0년 1월 31일        누가복음 13:31-35        “내가 갈 길을 가야하리라.“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B.C. and A.C. 로 나뉘게 될 것이다. 즉 the World Before Corona and the World After Corona, 라고 New York Times 의 opinion columnist 인 Thomas L. Friedman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과연 코로나 전과 후의 상황이 여러 면에서 많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사회전반에 걸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사람 간의 만남을 두려워하며 우리는 서로 격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만남의 장인 예배모임 조차도 비 대면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우리는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나간 후에는 그 영향력이 쇠퇴하여 다시 원상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불변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가 BC(Before Christ) 와 AD(anno domini) 로 나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인생도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믿은 후로 극명하게 나뉩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 여러분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답을 말하자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극적으로 바뀐 것입니다.
-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길을 따라서 가고 있었으나, 
-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예수님을 따라서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지금 누구를 따라서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다시 한 번 재확인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 배척당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시는 곳마다 대부분 배척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시의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동만 지켜왔던 신앙적 전통을 여지없이 꺠트려 버리셨습니다. 당시 예수님 앞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은 유대인들이며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믿음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사사건건 마음에 부딧쳐 왔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자기들이 그동안 기다리던 메시야(구원자)의 면모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지요. 당시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들은 회개할 것이 없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니라. 고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이 잘 아는 대로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인데..

-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으로 당시의 율법적 전통을 여지없이 타파하셨고,

- 구원에 대해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할례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에서 버림받았던 세리, 창기, 장애인들, 거지들 기타 죄인들을 맞아
  주시며 식사를 함께 나누시고...
 
- 당시에 존경받는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을 악한 위선자들이라고 책망하시고...

-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다닌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성경말씀대로 살아야만
  비로소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듣기 불편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 때에,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에서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자기들과 너무나 다르고 마음이 불편했던 까닭이며, 신앙적으로 고정관념에 빠져 있던 당시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어서 배척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쫓아내기 위해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하니 예루살렘에서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은근히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당시 이스라엘 땅을 통치하던 왕입니다.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침례요한 같이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던 유명인사도 헤롯의 말 한마디에 목이 잘렸습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이 침례요한의 죽음을 상기시키면서 협박을 한 듯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다르면 배척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 성경에 무어라고 말씀하셨나? 를 생각하기보다 자기의 전통, 고정관념, 관습, 타성, 자기 뜻과 소원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듣기 싫어하고 배척부터 하고 봅니다. 이것이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의 근성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하나님께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무숲 속에 자신을 숨긴 채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거부합니다.     

지금도 이 시대에도 예수님은 도처에서 배척을 당하십니다.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이루었다는 교회에서 조차도 예수님은 배척당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기보다, 자기 형편과 자기 의와 상황윤리에 빠져서 도리어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나름대로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성경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기보다 선별적으로 적용하고 이용하는 편리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지요?

전도 대상자에게 “예수님 믿으십니까?”라고 물으면 대개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 나는 가톨릭입니다.
- 나는 무슨, 무슨 대형 교회 다닙니다.
- 유명한 아무개 목사님 아시나요? 저는 그 교회 다닙니다.
- 우리 집안은 몇 대째 기독교 집안입니다.

이 모든 대답들이 제게는 일종의 협박처럼 들립니다.
내가 이런 정도인데 감히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다니, 건방지다. 뭐, 그런 느낌 말입니다.

제가 예수님 믿으십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는,
-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 받았습니까?
-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여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났습니까?
-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오늘도 그분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인데 말입니다.

나와 여러분은 그리고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 가지 세상의 형편과 상황을 이유로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예수님, 당신의 말씀은 맞는데요” 지금 상황이 그게 아닙니다. 내 형편이 이렇습니다. 그런 말로 변명하며, 예수님을 회유하려드는 것은 아닌가요?
예수님, 지금 Pandemic 상황인 것 아시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지 아실텐데요... 예수님 당시에는 coronavirus 같은 것이 없어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예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배척당하고 계십니다.
성경말씀에 기초한 건국정신 위에 건설된 미국도 반그리스도적인 도전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의 자녀 손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야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 손들에게 믿음의 본을 끼치며 그들을 성경말씀으로 철저히 무장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 내가 갈 길을 가야하리라. ...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은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신 분이라서 사람들이 따르고 좋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Robot 같은 분이 아니셨습니다. 외계인과 같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최소한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한 인간이셨습니다. 

- 어린 아이들이 따르고 좋아합니다.
- joke를 잘 하시고, 웃기를 좋아하셨음을 알 수 있고..
- 세상 돌아가는 것 다시 말해서 news를 사사 건건 잘 아시고
- 어느 날에는 성전에 가셔서는 크게 감정으로 내시며 다 때려 부수는가 하면,
- 때로는 슬퍼하시고, 안타까워하시고 눈물 흘리며 우시고, 통곡하시고,
- 배고프시고, 목마르시고...
-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는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제자들에게 하소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감당해야할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몸소 체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여기를 떠나라고 하실 때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된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3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길을 가야하리니...(32,33절)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헤롯왕을 들먹이며 협박조로 권고할 때 예수님은 헤롯을 간사한 동물인 여우 정도로 얕잡아 보시며 대담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여우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가서 말하라.
- 오늘과 내일 나는 내 할 일을 하리라. 
- 누가 뭐래도 나는 내 갈 길을 가리라.
예수님은 죽음의 도전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십니다. 

연약해 보이는 예수님, 학문도, 가문도, 권력도, 재력도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일 수도 있는 세상권력, 헤롯왕에 대해서 왜 이렇게도 당당하실 수 있는가?

(1)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어도 다시 부활할 것을 알고 계시며 영원한 승리를 아셨습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목숨을 걸어야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당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야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 때
  까지는 죽을 수도 없는 사명인이십니다. 

(3) 무엇보다도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과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신앙이 예수님을 담대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죽으셨고,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더욱 거룩한 모습으로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시면서 “내가 속히 다시 오겠다” 고 재림의 약속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과 그의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 우리는 죽어도 부활 할 것을 믿습니다. 
-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 우리는 주님께서 성령님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고독해 보이지만, 목숨을 건 사명자로서 당당히 선언하셨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아시는, 영원히 보장된 그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시고 지금 재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하리라.
우리는 오늘과 내일과 모레로 이어지는 현재적인 삶에 얼마나 충실합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과거사를 거론하며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다만 회개하고 죄 용서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늘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입니다.   
오늘을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은 내일도 그럴 것이며, 모레는 더 별수 없을 것입니다.
악순환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성이 우리의 몫입니다.
내가 갈 길을 가야하리라.

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9:2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현대인은 마치 방향타가 고장난 채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는 비행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부르고 죄인을 부르셨다. 네가 어디 있느냐?
- 아담을 부르셨다.
-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 아무개야, 아무개야 !
- 나를 부르신 주님
- 지금도 여러분 하나, 하나를 부르고 계시는 예수님 !

그 음성을 듣고 오늘과 내일과 모레....
우리가 갈 길을 가야하겠습니다. “내가 갈 길을 가야하리라.” 

우리는 어떻게 어디로 가야하겠습니까?
내가 가고 싶은 길, 내가 임의로 결정한 길을 가는 죄인의 길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대로 가지 않고,
- 나의 고집과 감정과 유익을 따라 가지 않고,
- 나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길로 가지 않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 자신이 원하는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길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고 불안과 공포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혹시 성공한 것 같아도 결국은 영원한 멸망 곧 지옥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우리 구주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길은 주님께서 앞서가신 길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가는 영원한 영광과 승리의 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인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확신을 가지고 일생을 경주자처럼 달려간 사람입니다. 그를 향하여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교회지도자들을 모이게 하고 작별하면서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선포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일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지기 아니하노라.(행20:22-24)

내가 갈 길을 가야하리라.
내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가야하리라.
오늘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주님을 따라 당당하게 믿음의 길로 달려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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