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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주일설교 "예수님과 나귀와 사람들 Jesus, a colt and the crow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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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28 15:00 조회 Read1,207회 댓글 Reply1건

본문


ㅇ 제 목 : 예수님과 나귀와 사람들 Jesus, a colt and the crowds
ㅇ 설교자 : 이아브라함 목사, Rev. Lee
ㅇ 본 문 : 마태복음 Mt 21:1-11
1. 마태복음 21:1-11
2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21:1 Now when they drew near to Jerusalem and came to Bethphage, to the Mount of Olives, then Jesus sent two disciples,
2 saying to them, “Go into the village in front of you, and immediately you will find a donkey tied, and a colt with her. Untie them and bring them to me.
3 If anyone says anything to you, you shall say, ‘The Lord needs them,’ and he will send them at once.”
4 This took place to fulfill what was spoken by the prophet, saying,
5 “Say to the daughter of Zion, ‘Behold, your king is coming to you, humble, and mounted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beast of burden.’”
6 The disciples went and did as Jesus had directed them.
7 They brought the donkey and the colt and put on them their cloaks, and he sat on them.
8 Most of the crowd spread their cloaks on the road, and others cut branches from the trees and spread them on the road.
9 And the crowds that went before him and that followed him were shouting, “Hosanna to the Son of David!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10 And when he entered Jerusalem, the whole city was stirred up, saying, “Who is this?”
11 And the crowds said, “This is the prophet Jesus, from Nazareth of Galilee.”

2. 스가랴 9:9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9:9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aloud, O daughter of Jerusalem! Behold, your king is coming to you; righteous and having salvation is he, humble and mounted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

3. 요한복음 1:14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have seen his glory, glory as of the only So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4. 요한복음 15:16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5:16 You did not choose me, but I chose you and appointed you that you should go and bear fruit and that your fruit should abide, so that whatever you ask the Father in my name, he may give it to you.

5. 사도행전 9:15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9:15 But the Lord said to him, “Go, for he is a chosen instrument of mine to carry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kings and the children of Israel.

6. 사도행전 28:14-15
28: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28:14 There we found brothers and were invited to stay with them for seven days. And so we came to Rome.
15 And the brothers there, when they heard about us, came as far as the Forum of Appius and Three Taverns to meet us. On seeing them, Paul thanked God and took cou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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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1년 3월 28일 (종려주일)  마태복음 21:1-11 
" 예수님과 나귀새끼와 사람들 "
"Jesus, a colt and the crowds"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그의 공적 생애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쩐지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한 단계이며 영원한 승리의 행진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지는 멧세지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1. 그리스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다윗의 자손은 구세주의 별명입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구원자를 보내겠다. 라고 계속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군중들의 외침을 통해서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은 이 장면에 등장하신 예수님과 그 정경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그리스도라기에는 어딘지 초라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는 지금 백마가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중입니다. 

또한 예수라는 이 청년은 갈릴리 지방의 목수의 아들로 알려진 보잘 것 없는 인물입니다. 이제 그는 30살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한 사람일 뿐 아니라, 약 3년 전에는 아예 집을 나와서 갈 곳도 없는 노숙자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지난 3년 동안 그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인지라 구설수에 휘말린 상태입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르는 반면에, 또 다른 사람들은 귀신들린 자라고 매도하며 심지어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그가 신성모독을 하였으므로 죽이려고 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 수수의 사람들 외에는 대부분이 예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지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자못 희화적입니다. 작은 새끼나귀를 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환영하는데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베어서 길에 펴기도 하고, 앞뒤에서 호위하며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그를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모시고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 왕 중의 왕, 메시야의 행차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볼 때, “저 무지한 것들이 감히, 철없이 어린애 같은 장난을 하는구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보기에도 이 장면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권능과 위엄은 고사하고 초라하고 처량하고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진정 다윗의 자손이요, 주의이름으로 오시는 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는 침례 받으시는 순간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는 거룩한 장면의 주인공이십니다.
- 그는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분이십니다. 
- 그는 광야에서 보리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신 분입니다.
- 그는 물위를 걸어오시고 말씀으로 풍랑과 바람을 잔잔케 하신 분이십니다.
-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수많은 병자들을 온전히 고쳐주신 분이십니다.
- 그는 변화산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형되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에서 나타나신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든 그 분의 본래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뜻을 이루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서 9:9
시온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헴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 상관없이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예언의 말씀의 성취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초라할  큼 겸손한 분이시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스스럼 없이 그를 만나 뵈올 수 있고 말씀을 듣고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세리, 창녀, 죄인들, 병자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까지도 말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우리들 각 사람의 인생 속에 그렇게 들어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들 사는 이 시대는 모든 것들이 과대포장 되고 또 사람들은 포장을 보고 내용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각자에게 보이는 대로 평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본질을 보고 접근해야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인생을 바친 요한사도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예수님의 존재를 관찰하고 경험한 후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도다. 

세상이 예수님을 어떻게 보든지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2. 주께서 쓰시겠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타고 들어오실 나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나귀도 예수님께서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귀는 이 장면에서 주연이신 예수님을 태워드린 조연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맞은편 마을에 가면 매인 나귀새끼가 있을 테니, 가서 끌고 와라. 혹시 누가 왜 가져가느냐고 물어본다면, “주께서 쓰시겠다.” 라고 말하면 보낼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갔더니, 거기에는 정말로 나귀가 있었으므로, 제자들이 끌고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십니다. 

이 나귀는 아직은 별로 귀하지 않은 초라한 새끼입니다. 그러나 이 나귀는 구약성경을 성취하기 위해서 쓰임 받은 귀중한 존재입니다. 성경에 예언되어 있으니까 반드시 나귀새끼를 타고 오셔야 하기 때문에, 꼭 나귀새끼가 필요한데 지금 바로 이 나귀새끼가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나귀새끼가 많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 여기 지금 바로 이 나귀가 선택받고 쓰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합니다.

나귀라고 다 똑같은 나귀가 아닙니다.
- 나귀 등에 무엇을 싣고 다니느냐에 따라서 그 품격과 가치가 달라집니다.
- 무슨 일에 쓰임 받느냐에 따라서 귀하게 여겨지기도 천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나귀야말로 왕 중의 왕,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등에 태워드리고 구약성경의 역사를 성취하는 거룩한 사역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나귀새끼보다 못하게 살고 있습니까?
결코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욕심을 이루어 보려고 힘에 겹도록 무거운 등짐을 지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인생을 허우적거리는 것이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 아닙니까? 

그러나 이 나귀는 많은 나귀 중에 하나일 뿐이었으나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등에 태워드렸기 때문입니다. 나귀도 이렇게 쓰임을 받을진대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또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고귀한 피 값으로 구원하신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등에 태우고 가고 있습니까?
- 예수님이십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의 욕심 덩어리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많은 인생들 가운데서 우리들 하나하나를 불러서 여기 다 앉혀놓으셨을 때에는 “주께서 쓰시겠다. 는 그런 뜻과 계획이 분명히 있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초라해 보입니다. Covid-19의 두려움 때문에 입마개를 하고 여기에 작은 수가 모였는데 그것도 흩어져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우리의 모임과 사역과 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린 나귀새끼처럼 연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 나귀를 타신, 이 예수님이 온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신 것을 믿고 우리도 주님의 복음을 묵묵히 실어 나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역사를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종려주일 이 자리에서 “주님께서 나를 쓰시겠다고 하셨구나” 이 한마디 가지고 돌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오늘 여기 왜 와있는가? 내 사회적인 형편이 보잘 것 없고, 내 인생의 모습이 초라하고, 나의 과거가 후회로우며, 나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쓰시겠다. 그는 나에게 뜻들 두고 계시다. 그는 나를 향한 꿈이 있으시다. 그와 같은 여러분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존재가치를 확신하고, 그리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돌아가는 귀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만 이 때 나귀새끼가 주의해야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펼쳐놓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외치며 환영하는 것이 나귀새끼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나귀의 등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이지, 나귀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만일 나귀가 이것을 착각 하게 되면, 그 때부터 이 나귀새끼는 코메디를 연출하게 됩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어요. 사람들이 소리를 외치며 환영하니까 나귀가 두발을 번쩍 들고 흔들고, 좌우를 돌아보면서 군중들에게 화답하는 장면 말입니다. 아주 꼴불견이겠지요. 이 나귀새끼가 군중의 환호에 답하기 위해서 앞발을 들고 일어서게 되면 등에 있는 예수님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 나귀새끼는 이미 그 때부터 쓸모가 없어집니다. 두들겨 맞기 십상입니다. 

우리 교회가, 제가,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높여드리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교회를 소개할 때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시는 성경적인 교회라는 믿음을 가지고 소개해야 합니다.
-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교회.
-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교회.
- 교회 식구들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게 되는 교회,
그런 교회를 우리가 함께 이루어가야 하리라 믿습니다.

3.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본문의 장면에서 예수님은 주연이시고, 나귀새끼는 조연이라면, 찬양하는 군중은 엑스트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메시야(그리스도)라고 외칩니다. 그로 인하여 온 송이 소동이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예루살렘 사람들이 이들의 외침을 듣고 “이는 누구냐?“ 라고 묻자, 무리가 ”그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것과 선지자라고 믿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헷갈리고 있으며, 실은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 사람들은 불과 며칠 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하거나 아니면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진정으로 알지 못하였으므로 생긴 비극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개척한 곳이 Montery, California 이었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와서 말하기를, “목사님,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라는 동요 아시잖아요?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장에 가셨나봐요???” 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분은 성경을 처음 대한 분이라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서 성경을 더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오늘 본문의 군중들처럼 헷갈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닙니다. 한국인의 4분의 1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신앙의 내용입니다. 솔직히 지금 우리들 주위에 교회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지 않습니까?
- 예수님은 진정 누구이신가?
- 그 분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오직 성경공부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대부분 성경공부를 기피합니다.
나름대로 아는 성경이야기를 가지고 마치 성경을 다 아는 양 스스로 자만하기 쉽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무리들과 같이 헷갈리면서 교회를 다니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성경공부에 착념하기를 부탁드립니다. 공부합시다. 훈련합시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주님의 역사를 위해서, 그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택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에게 어디어디에 가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나니아가 말하기를 아! 그 사람은 우리 성도들을 핍박하던 바리새인입니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9장 15절에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내가 택한 그릇이다. 내가 쓰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그를 놀랍게 쓰셔서 우리가 사도행전과 바울의 모든 서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는 귀한 나귀새끼로서 살다가 그 인생을 마쳤습니다.

우리가 함께 사도행전 28을 찾아보겠습니다. 바울이 죄수의 모습으로 로마에 입성하는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28:14-15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카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지금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지금 가고있습니다. 포승으로 묶이고 옆에는 군사들이 좌우에서 호송하고 있습니다. 그는 죄수입니다. 그런데 여기 압비오 광장 이란 그 유명한 아피안 대로를 말합니다. 로마로 가는 돌로 포장된 넓은 도로입니다. 거기는 로마의 군대들이 외국에 가서 싸움에 이기고 나면 그 장군들이 마차를 타고 행진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승리한 장국들은 아피안 대로를 따라 행진하여 로마에 이르러 황제 앞에 승리를 보고하고 크게 영광을 받는 그런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아피안 대로를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참으로 애처롭습니다. 그러나 바울 그 사람의 내면에, 그 심령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지금 그는 당시에 전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를 향하여 복음을 가지고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를 복음으로 점령해야 되겠다. 아니, 이미 주님께서 이 로마를 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승리자로서, 정복자로서 당당히 아피안 대로를 따라서 행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살렘에 당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던 예수님이 초라해 보였지만, 사실은 복음을 가지고 세계구원을 선포하러 오셨던 것처럼, 바울이 초라한 모습으로 아피안대로를 가고있지만,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가지고 강대한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할 그런 포부를 가지고 돌격적인 마음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속에 주님으로 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부르심을 받아 그의 백성으로 인정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새끼 나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수님을 등에 태우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아피안 대로를 걸어가는 죄수 바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복음이, 그가 모시고 있는 주님의 능력이 그 모든 일을 해냈습니다. 결국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들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굴복해서 온 세계가 맥을 못추고 있으며 심지어 예배가 중단되고 사역의 문이 닫히는 허탈한 경험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초라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지배자인 마귀를 물리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듯이 우리도 그 안에서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쓰시겠다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나귀새끼들입니다. 이제 주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묵묵히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걸어가는 새끼 나귀들이며, 사도 바울과 같은 종들이며, 이 시대의 전도자들이요, 사명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모습으로든지 쓰임 받아서 이 시대를 정복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담대하게 살아나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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