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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주일설교 "광야로 나아가라! Go out into the wilder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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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손종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12-05 14:41 조회 Read83회 댓글 Reply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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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 목: 광야로 나아가라! "Go out into the wilderness"
ㅇ 설교자 : Abraham Lee 목사
ㅇ 본 문:사도행전 Ac 8:26-40

참고구절:
사도행전 8:26-40 (개역개정/ESV)

8: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8:26 Now an angel of the Lord said to Philip, “Rise and go toward the south to the road that goes down from Jerusalem to Gaza.” This is a desert place.
27 And he rose and went. And there was an Ethiopian, a eunuch, a court official of Candace, queen of the Ethiopians, who was in charge of all her treasure. He had come to Jerusalem to worship
28 and was returning, seated in his chariot, and he was reading the prophet Isaiah.
29 And the Spirit said to Philip, “Go over and join this chariot.”
30 So Philip ran to him and heard him reading Isaiah the prophet and asked, “Do you understand what you are reading?”
31 And he said, “How can I, unless someone guides me?” And he invited Philip to come up and sit with him.
32 Now the passage of the Scripture that he was reading was this: “Like a sheep he was led to the slaughter and like a lamb before its shearer is silent, so he opens not his mouth.
33 In his humiliation justice was denied him. Who can describe his generation? For his life is taken away from the earth.”
34 And the eunuch said to Philip, “About whom, I ask you, does the prophet say this, about himself or about someone else?”
35 Then Philip opened his mouth, and beginning with this Scripture he told him the good news about Jesus.
36 And as they were going along the road they came to some water, and the eunuch said, “See, here is water! What prevents me from being baptized?”
37
38 And he commanded the chariot to stop, and they both went down into the water, Philip and the eunuch, and he baptized him.
39 And when they came up out of the water, the Spirit of the Lord carried Philip away, and the eunuch saw him no more, and went on his way rejoicing.
40 But Philip found himself at Azotus, and as he passed through he preached the gospel to all the towns until he came to Caesarea.


요한복음 5:39 (개역개정/ESV)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5:39 You search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that in them you have eternal life; and it is they that bear witness about me,


사도행전 8:37 (개역개정/ESV)

사도행전 8:37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매 내시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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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1년 12월 5일            사도행전 8:26-40        " 광야로 나아가라 " , “Go out into the Wilderness!”

3년 전에 제가 이디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신학교에 가서 한주간 동안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북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대부분 이슬람국가들이어서 기독교인은 3-5% 정도 뿐인데 반하여, 이디오피아는 약 18%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이디오피아의 인구 1억 2천만이므로 기독교인은 약 2천만명입니다. 오늘 말씀의 간다게 여왕의 재정을 맡은 내시 한 사람이 거듭남으로서 2천년 동안 순수 기독교 인구가 2천만명으로 늘어난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 거듭나는 한 영혼, 한 영혼의 역할과 영향력이 얼마나 중자대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 본문의 내시를 통해서 재확인하기를 바랍니다.   

1. 빌립을 광야로 보내신 성령님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한찬 부흥하고 있을 때, 스데반 집사님이 참혹하게 순교당하자 사도 외에는 다 예루살렘을 떠나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신앙을 핍박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말살 될줄로 기대했겠지만, 하나님은 핍박을 피해서 흩어진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이 더욱 널리 퍼지게 하셨습니다.

그 흩어진 그리스도인들 중에 빌립이라는 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성령님께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광야이었다고 합니다. 가사는 지금의 Gaza Strip 이라는 곳으로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자존심과 생존을 걸고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대치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 사마리아에서 열심히 복음전도를 하고 있는 빌립을 광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전도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해야 효과적일텐데 광야에서 과연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빌립은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이나 계획이나 야심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빌립이 무작정 광야에 도착해 보니, 거기에는 수레를 타고 가는 행렬이 있었습니다. 그 무리의 주인공은 에디오피아 여왕의 재무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지요.
에디오피아와 이스라엘나라의 관계는 멀리 구약시대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41에서 남방여왕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역대하 9:4, 열왕기하 10:5에 보면 스바(Sheba)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찾아왔다가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을 비롯한 모든 규모를 보고는 정신이 황홀하였다, 크게 감동되었다. 고 합니다.(There was no more spirit in her. KJV) 정신 줄을 놓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솔로몬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이디오피아 통합제국의 초대왕 메네릭 1세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인연으로 인하여 매년 절기마다 이디오피아의 관리가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는 것이 관례가 된 것 같습니다. 
 
빌립이 광야에서 만난 것이 바로 이디오피아의 재무장관의 행차이었습니다. 재무장관이 먼 길을 여행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이 조금 주저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그에게 구약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전했고, 그는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고....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만약 한 나라의 재무장관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빌립집사를 만났다면 서로 이야기가 되었을까요? 그가 예루살렘 성전 앞 화려한 곳에서 수레를 타고 가는데 빌립이 가서 “읽는 것을 깨닫는가”고 접근했다면, 과연 그가 대꾸나 했을까요? 아니, 이런 타국의 고관을 빌립이 감히 만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가 광야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에 만남이 이루어지고 전도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우리 함께 지도를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가사로 내려가라 고 하실 때 빌립은 북쪽 사마리아에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가자지구까지 145 KM거리입니다. 그리고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는 남동쪽인 예루살렘에서 이디오피아로 출발했을텐데, 거기서 가사지구까지는 76 KM입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는 산을 돌아가야 함으로 140 KM 떨어져 있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남동쪽 끝에 있는 가사에서 만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 계획 가운데 이루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들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필연적인 역사이었습니다. 마치 우주선이 드넗은 우주공간에서 docking 하듯 말입니다.

금년 12월 13일이면 제가 Los Angeles 한인침례교회에서 전도사로 임명 받은지 꼭 40년이 됩니다. 저는 그 때 서리집사이었다가 극적으로 목회에 헌신 했는데 그 때 저의 목사님이신 김동명목사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이제 어디에 가서 사역을 하면 좋을까?”
그 때 제가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습니다.”
이것은 제가 고안해 낸 말이 아니라 당시 성령님께서 저의 마음에 주신 확신이었기에 두려움 없이 결단하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Monterey 라는 작은 도시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대도시 로스앤절스에 비하여 그곳은 광야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환경적으로도 그렇고 생계도 아무런 보장이 없이 우리들은 마치 그 작은 도시에 던져진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9년 반을 사역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을 전연 모르던 군인가족 자매님들과 가족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분들은 대개 1년 혹은 2년이면 다른 곳으로 가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전도해야 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온 유학생장교들과 가족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주고 말씀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한국 어디에서 만났다면 그토록 진지하게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어렵게 공부하느라고 지친 심정, 그야말로 광야에 버려진듯 힘든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귀와 마음이 열렸던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로스앤젤스나  한국에 있었더라면 이러한 분들을 어떻게 많이 만나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광야 같은 환경에서 만났기에 열심히 말씀을 주고받고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지요.

빌립을 광야로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그 곳에 보내실 때 이미 누구누구를 만날 것을 알고 계셨고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저희들이 2014년에 LA 21세기 침례교회에서 은퇴하고 이곳 피닉스에 와 보니 정말 광야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러분들과 만나서 함께 교회를 이루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행하셨다는 생각을 해 보면 놀랍고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필연적인 역사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 길은 광야라“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광야라는 환경은 전도하기에 부적절한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했더니, 에디오피아의 재무장관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요, 그 영향력으로 인하여 현재 이디오피아에 2천만이나 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진정 하나님 앞에서 할 사명이 있습니다.
- 우리는 우연히 만나고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연히 헤어져서도 않됩니다. .
- 우리 서로는 하나님의 필연적인 계획 가운데 만났기 때문입니다.

2. 읽는 것을 깨닫느냐?   
빌립이 마차에 가까이 가보니 재무장관인 내시는 구약성경 이사야를 읽고 있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늘 하는 것처럼 소리내어 읽는 것이지요. 이 사람은 참으로 열심히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돌아가는 길인데 또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4,200 KM(2600 Miles)이므로 몇날 며칠을 수레를 타고 와서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돌아갑니다. 참으로 열심히 있는 사람이지요. 한나라의 재무장관이요, 큰 권세가 있는 사람이니 돈도 많고, 다른 할 일도 많고, 재미있는 것도 많을 텐데,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심과 경건한 삶이 순전히 자기중심적이며, 습관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을 읽기는 읽는데 무슨 말인지 뜻인지 모르는 것이지요. 그저 성경이니까 들고 다니고 읽고 베고 자고 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라는 그런 미신적인 믿음을 벗어나지 못한 듯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면, 제사장들이 대 환영을 했을 것입니다. 타국의 큰 고관이며 부자가 찾아왔으니까요, 그 영혼보다도 그의 돈주머니나 그의 직책에 더 관심이 있었겠지요. 제사장들은 이 내시의 영혼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 합니다. 그가 제사장들에게 성경에 대해서 물어봤겠지요? 그러나 마땅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종교에 열심은 있었으나 그의 영혼은 여전히 공허하고 메마른 광야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수년 동안 습관적으로 성전에 다니면서도 성경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성전의 제사장들입니다. 내시는 제사장들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열심히 읽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과연 누구인지 성전의 제사장들조차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습관적, 자기중심적인 종교행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그것이 내게 대하여 한 말이니라. (요 5:39)

빌립이 묻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내시가 대답합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방금 전에도 성전에 갔다가 오는데 아무도 제대로 지도하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것이 그의 신앙문제이며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겠습니까? 오늘날 교회는 어떠합니까?성경 말씀과 상관없이 마치 우상을 섬기듯이, 미신을 숭배하듯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으나 여전히 허전한 가슴을 가지고 쓸쓸히 광야 길로 가는 이 사람의 심정은 그야말로 거친 광야와 같고 메마른 사막과 같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심정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빌립을 보내셨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심정과 사정을 아시고 우리의 믿음의 모양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든 여러분들에게 말씀으로 권면할 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35절)
빌립이 이사야 53장 말씀에 있는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 같은 존재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시며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다는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에 내시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 고난 받는 종이 곧 구주 예수님이었구나?“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고백과 선포로서 침례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겠지요. 마음으로 믿는 것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침례의식이니까요. 그러는 중에 그들은 물이 있는 곳에 왔습니다. 

3.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그때 내시가 빌립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6절의 말씀입니다. 침례를 받겠다고 당당히 자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에는 37절 (없음) 이라고 표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King James Version 에는 37절이 있습니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매 내시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물에 내려가서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는 물속에 들어가는 침례 밖에는 없습니다. 만일 불을 뿌리는 의식을 하려고 했다면 두 사람이 물로 내려갈 필요 없이 수레 안에 가지고 있던 물병을 꺼내어 그 즉시 베풀 수도 있었겠지요? 성경에는 물속에 잠기는 침례의식 밖에는 다른 의식은 없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서 시작된 복음전도가 오아시스에서 침례를 베푸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내시는 메마르고 황페한 광야 같은 인생에서 영원한 생명의 오아시스 이신 예수님께 그 인생을 바쳐드린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구주 예수님을 깨닫고 그 마음에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이지요. 죽음이 지배하는 광야 같은 인생이 생명이 약동하는 오아시스로 변화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이 내시와 같이 허전한 가슴으로 교회를 오가게 될까 생각을 해봅니다. 실지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열심히 교회 다니는 습관도 있습니다. 성경도 읽습니다. 성경공부도 합니다. 십일조를 드립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헌신을 합니다. 교역자들로부터 좋은 교인이라는 칭찬도 듣고 상도 받고 직분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몇 대에 걸친 기독교가정이기도 합니다. Mission school을 다녔습니다. 모태 신앙이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식적 종교생활이냐? 믿음생활이냐?
우리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입으로만 예수, 예수 한다면 그 또한 에디오피아 의 내시와 다를 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과는 상관없이 나름대로 설정한 하나님을 우상숭배하 듯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방금 전에 요5:39을 읽었습니다만 성경전체가 곧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시며, 창세전부터 이미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때가 되매 이 세상에 죄인들을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는 죄사함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약속입니다. 
 
성경말씀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의 종교적 전통, 습관, 선입관, 나름대로의 종교생활, 자기 의를 다 벗어 버려야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벌거벗기 운 채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 앞에 우리도 스스로 걸치고 있던 모든 종교적인 누더기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말씀을 받아들이기를 축원합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이디오피아의 재무장관을 전도한 빌립은 세상적으로 볼 때 그야말로 대어를 낚은 셈입니다. 내시는 빌립에게 영적으로 빚을 진 사람이구요. 그러나 빌립은 아무 사심이 없었습니다. 요사이 어떤 사람들 같았으면, 큰 일꾼을 전도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과 교회를 세우고, 교회당을 짓고 크게 사역을 하라고 하시나보다.... 했을 텐데요.
성령님께서 빌립을 이끌어 가셨다고 했습니다.
"빌립아, 너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잃어버렸던 한 영혼이 구원받고 주님께 돌아온 것만으로 족하다."

그 사람을 통해서 네 팔자고칠생각 말아라. 너의 먹고 사는 문제를 그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과연 빌립은 불쌍한 한 영혼이 그의 사역을 통해서 구원 받은 것으로 족했습니다. 

우리는 새해에도 “한 영혼을 주님께로...”라는 목표를 가지고 도전할 계획입니다. 교회를 부흥시킬 목적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주님께 드리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빌립과 같은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 전도훈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광야 길로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광야와 같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거시에서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만 나가서 입을 열어 복음을 전기만하면 됩니다. 그 다음은 주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관리자1님의 댓글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And Philip said,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ine heart, thou mayest. And he answered and sai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Acts 8:37, KJV)
빌립이 가로되 네가 전심으로 믿으면 할 수 있느니라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노라 (사도행전 8:37, KJ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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