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2 주일설교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설교모음 Sermons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설교모음 Sermons

05.22 주일설교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페이지 정보

Author 손종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5-22 17:36 조회 Read807회 댓글 Reply1건

본문



ㅇ 제 목: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In the name of Jesus Christ, walk!
ㅇ 설교자 : 이 아브라함 목사 Rev. Lee
ㅇ 본 문: 사도행전 Act 3:1-13

사도행전 3:1-13 (개역개정/ESV)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3:1 Now Peter and John were going up to the temple at the hour of prayer, the ninth hour.
2 And a man lame from birth was being carried, whom they laid daily at the gate of the temple that is called the Beautiful Gate to ask alms of those entering the temple.
3 Seeing Peter and John about to go into the temple, he asked to receive alms.
4 And Peter directed his gaze at him, as did John, and said, “Look at us.”
5 And he fixed his attention on them, expecting to receive something from them.
6 But Peter said, “I have no silver and gold, but what I do have I give to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rise up and walk!”
7 And he took him by the right hand and raised him up, and immediately his feet and ankles were made strong.
8 And leaping up, he stood and began to walk, and entered the temple with them, walking and leaping and praising God.
9 And all the people saw him walking and praising God,
10 and recognized him as the one who sat at the Beautiful Gate of the temple, asking for alms. And they were filled with wonder and amazement at what had happened to him.
11 While he clung to Peter and John, all the people, utterly astounded, ran together to them in the portico called Solomon's.
12 And when Peter saw it he addressed the people: “Men of Israel, why do you wonder at this, or why do you stare at us, as though by our own power or piety we have made him walk?
13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the God of our fathers, glorified his servant Jesus, whom you delivered over and denied in the presence of Pilate, when he had decided to release him.


마태복음 8:3 (개역개정/ESV)

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8:3 And Jesus stret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him, saying, “I will; be clean.” And immediately his leprosy was cleansed.


마태복음 16:25-26 (개역개정/ESV)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16:25 For whoever would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26 For what will it profit a man if he gains the whole world and forfeits his soul? Or what shall a man give in return for his soul?


마태복음 11:2-6 (개역개정/ESV)

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11:2 Now when John heard in prison about the deeds of the Christ, he sent word by his disciples
3 and said to him, “Are you the one who is to come, or shall we look for another?”
4 And Jesus answered them, “Go and tell John what you hear and see:
5 the blind receive their sight and the lame walk, lepers are cleansed and the deaf hear, and the dead are raised up, and the poor have good news preached to them.
6 And blessed is the one who is not offended by me.”


이사야 35:4-6 (개역개정/ESV)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35:4 Say to those who have an anxious heart, “Be strong; fear not! Behold, your God will come with vengeance, with the recompense of God. He will come and save you.”
5 Then the eyes of the blind shall be opened, and the ears of the deaf unstopped;
6 then shall the lame man leap like a deer, and the tongue of the mute sing for joy. For waters break forth in the wilderness, and streams in the desert;


빌립보서 1:20-21 (개역개정/ESV)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1:20 as it is my eager expectation and hope that I will not be at all ashamed, but that with full courage now as always Christ will be honored in my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Reply List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2년 5월 22일    사도행전 3:1-1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우리가 운전하다보면 대부분의 코너마다 Homeless이 구걸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McDonald, Burger King, Jack in the Box, In and out Burger 등등 fast food store 나 기타 상점 유리창에 시간당 15불을 준다는 광고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장애인이나 늙고 병든 veteran 이라면 모를까 사지 멀쩡한 젊은이 영어도 잘 하면서 구걸을 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않되어 고개가 갸우뚱 거려집니다.

2천년 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갈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선천적 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동냥질 뿐이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도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가 구걸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수동적이며 소극적인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메어다다 성전 문앞에까지 갖다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거의 모든 일상생활도 다른 사람에게 의탁하며 페를 끼치는 인생으로써 그의 운명은 실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살았다고는 하나 죽은 목숨입니다.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의 나이는 40세 정도 되었다고 한다. (행 4:22)니 오랜 세월을 이렇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매일이 그저 그날이며 소망이라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구걸하는 것 외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버려진 인생이므로 그 또한 다른 사람에게 페를 끼친다. 그의 운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달여 있다. 살았으나 죽은 목숨이다. 참으로 불쌍하다. 좀 죄송한 말이지만 제가 원주민 마을엑 갔을 때 그분들을 삶을 일별해 보고 느꼈던 감정이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미문이라는 성전 입구에 있을 뿐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성전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는 성전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서 성전에 대해서 들을 뿐 그 자신은 성전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인지라, 결국 하나님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마도 자기자신 스스로 하나님께 저주 받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다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인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림 받고 세상에서도 버림받은 이 인생은 얼마나 가련한가요?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구걸을 했습니다. “한푼 줍쇼“

여기에서 “본다”는 단어가 세 번 연속적으로 등장합니다.
- 거지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감을 보았습니다.
  돈 몇푼을 받을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는 동작입니다.

- 베드로와 요한이 거지를 주목하였습니다.
  이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는 동작입니다.

- 베드로가 거지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합니다.
  집중하며 정신을 차리고 보는 동작을 말합니다.

이 걸인이 오래도록 이 곳에서서 구걸을 했지만 성전을 오고가는 많ㅇ른 사람들이 돈 몇푼을 동냥을 주는 것 이외에는 그의 인생에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주목했습니다. “Looked straight at him...”
여기에서 주목했다는 동작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자세히 처다 본 동작과 같은 단어입니다.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여 보는 것을 뜻합니다. 베드로는 이 앉은뱅이의 인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바라 본 것입니다. 그를 저주 받은 거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써, 구원 받아야할 한 영혼으로 본 것입니다. 거기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거지에게 우리를 보라, 고 했습니다. 이는 그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동작입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자기의 기대를 가지고 보았습니다. 돈 몇푼을 얻을까?
베드로는 돈 몇푼을 기대하는 안을뱅이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그가 기대하는 돈 몇푼 보다 새로운 차원의 인생을 보여주기 위한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앉은뱅이의 시선이 맞 부딛쳤을 때 거기에서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시고 그 접점에서 기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선을 마주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매우 귀중합니다.
-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는 계속해서 아기와 눈을 맞추지 않습니까? 
-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사랑을 불태우지 않습니까?
- 우리가 만날 때도 서로 눈을 맞출 때 진지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 우리 모두 서로 주목하여 눈을 마주치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의 시선과 거지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 은과 금 즉 돈은 내게 없다.
  그것을 네게 주어봤자 너는 계속 거지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 내가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을 힘잆어 일어나 걸으므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라. 그런 말 아니겠습니까?

그 때 만일 이 앉은뱅이가 예수 그리스도 말고 돈을 달라고 떼를 썻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는 베드로가 동전 한개를 던저 주고 성전으로 들어가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남은 인생을 그대로 앉은뱅이로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킬 때 그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뒤고 걸으며 성전 안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가 베드로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라서 한번도 스스로 걸어본 적이 없는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발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걸었습니다. 뛰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방금 전에 동전한 잎을 기대하며 손을 내밀던 거지와 지금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이 사람을 비교해 보세요.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듭나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를 연상케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실 때 한 문둥병자가 애원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 즉시, 예수님의 손이 문둥이에게 닿은 바로 그 순간에 문둥병자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닿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람에게 푼돈을 주었을 것입니다.
성전에 제사드리려 가는 사람들이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적선을 했겠지요. 
유대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모두 그리했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늘 그렇게 소망 없는 인생을 운명적으로 살았겠지요.   

- 그러나 그에게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발로 걷고 뛰는 것이었습니다.
- 성전 문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 안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 타인에게 짐이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도전적인 인생을 살아야했습니다.

그는 지금 베드로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인생을 되찾고 적극적, 긍정적, 생산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 이 사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거지는 이 시대를 사는 영적인 앉은뱅이의 모형입니다.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고 죄를 끝없이 반복하며 그것이 인생인줄 알고 소망없이 살아가는 현대인 말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당당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에 편승하고 사람의 눈치를 보며 불안하게 살아가는 인생들 말입니다. 자기의 인생인데도 자기의 것이 아닌양 마치 동냥하듯 살아가야하는 죄인 말입니다. 꿈도, 비전도, 인생의 목적도 없이, 혹은 목적이 있다고 하나 결국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들을 위해서 사는 것, 결국 이루어봐도 허무할 뿐인데 말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 많이 벌어서 세상적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의 가치관을 초월하는 인생.
- 동냥을 위해서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걸어가는 인생, .

저는 장례식을 집례할 때마다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여기 관속에 뉘인 시체로 끈난다면, 혹은 화장을 해서 한줌의 재로 땅에 뿌려져서 끝난다면 우리의 인생의 가지촤 존재가 무었입니까?

두주 전에 저의 매형이 86세를 일기로 주님께로 가셨습니다. 화장해서 한줌 재로 남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박사이며 교수로서, 그리고 한국의 유수한 대락 부총장을 지내셨습니다. 부인인 저의 누님도 박사, 교수, 딸들도 박사 사위도 박사, 그리고 부자라고 할함큼 재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 앞에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영원한 천국으로 개선하는 것 외에 그분에게 그 뭉엇이 의미가 있습니까? 그분은 운명하시기 약 한 달전에 박사이었다가 목사가 된 사위로부터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구구로 영접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말씀을 다시 들어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5-26)

사람이 제 나름대로 인생을 살면 결국 생명을 잃어버릴 것이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결국 지옥에 갈 것이라면 그 가진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 라는 말씀입니다.

앉은뱅이 거지가 돈을 기대하고 처다 볼 때, 배드로의 말을 다시 들어보십시다.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그러므로 그런 것은 기대하지 마라.
-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는 그가 새 생명으로 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 은과 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이라는 명목으로 부자되는 것, 출세하는 것, 등등 은과
  금을 주겠다고 은근히 유혹하지 않는가?
- 우리는 당신에게 축복을 줄 것은 없고 우리가 가진 것으로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 받고 구원 받아 영생을 얻으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이 세상을 초월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사십시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
현대교회는 예수님 믿으면 은과 금이 생긴다고 유혹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동냥하듯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며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전진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얼ㅆ습니다. 얼마나 감격이 되었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했겠어요.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의 손을 잡고 매달렸겠지요.
사람들은 이를 보고 크게 놀랬습니다. 자기들이 잘 아는 앉은뱅이가 단번에 고침을 받다니..
그들은 솔로몬 행각이라는 곳에 몰려들어서 베드로와 요한을 칭송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명성을 얻고 권위를 얻을 찬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반응을 보십시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사람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의 권위라고 생각하느냐?이적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의 조상의 하나님이 그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고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지 왜 사람이 영광을 받아야하는가? 라는 말입니다.

무슨 조그만 기적이라도 일어나면 사람의 권능과 경건으로 한 것처럼 자랑하는 세태...
-기도를 많이 해서... 영적으로 깊은 체험이 있어서...
-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권능을 주셔서.. 등등 하나님을 이야기 하면서도 결국은 자기자
  랑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

어떤 목사는 수천명이나 되는 교인들 앞에서 강변하기를,
“병원장도 포기한 죽어가는 그의 아들을 내가 기도해서 고쳤어요, 대학병원에서도 포기한 불치병 환자를 내가 기도로 완치했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권위를 주시는 거예요.”.라고 하자 수천명의 교인이 “아멘...” 하는 동영상이 돌아다닙니다. 

여러분,
이 장면헤서 과연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가, 아니면 그 목사가 영광 받는지요? 
오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이 시대에는 이 말씀은 육체적으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고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면서부터 죄인인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해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 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 필요 없으니 돈을 벌게 해달라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탄의 유혹에 속고 사는 영적인 앉은뱅이들이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 구원, 천국, 그런 것 필요 없어, 나를 이대로 내둬, Leave me alone...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필요 없다. 동전이 나 하나 던저주세요.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우리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힘을 얻고 능력을 받아 연약한 데서 강해지며, 낙망하던 인생이 소망을 가지고, 피동적으로 주저 앉아 있는 인생이 일어나 세상을 향해서 도전하는 영혼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이 무기력하고 방향없는 인생으로 방활하기 쉬운 때입니다.
무엇을 해야할까? 어떤 인생을 살까? 돈이 있느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 있는 현대사회 풍조에서 주저 앉아 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려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용기와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지금 왼쪽 눈이 잘 안보입니다. 왼쪽 귀도 막힌 상태입니다. 나이도 80이 다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 교회를 또 세우고 싶습니다.
- 에디오피아에 가서 강의도 하고, 전도도 하며 선교사역도 하고 싶습니다.
- 중국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저의 신앙의 자녀들에게 가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 주안에서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아서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은과 금은 없으나 내게 있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과 능력 때문입니다.

저는 빌립보서 1:20-21에서 사도바울이 외친 것과 같은 믿음으로 주님의 나라를 향해서 달음질 하고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너의 눈은 봄으로 너의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교회소개 About Church 개인정보취급방침 Privacy Statement 서비스이용약관 Terms of Service Copyright © jiguchonchurch.org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o top

Southern Baptist Convention Arizona Global Baptist Church
536 E. Fillmore St., Tempe, AZ 85288 / T. (48O) 442-732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Mobile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