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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주일설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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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관리자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6-25 12:12 조회 Read443회 댓글 Reply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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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 목: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Discern the will of God
ㅇ 설교자 : 이아브라함 목사
ㅇ 본 문: 로마서 12:1-8

1. 로마서 12:1-8 (개역개정)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2. 고린도후서 11:2-3 (개역개정)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3. 히브리서 11:4 (개역개정)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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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3년 6월 25일            로마서 12:1-8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여러분들은 대부분 date 해 본적이 있겠지요?
Date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사귐을 갖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데이트하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밥도 먹고 그리고나서 헤어지면 다음 만날 떄 까지 상대방을 싹 잊어버리고 남처럼 사나요? 그렇지 않지요. 비록 상대방이 눈 앞에 없어도 늘 생각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다음 만날 날을 기다리고 ….

예배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만나서 존귀와 영광을 드리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섬기는 삶을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2-3)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정혼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완전한 결혼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를 기다리며 주님과 date 하는 주님의 신부들이라고 바울사도가 정의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영원한 남편 되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함께 나누는 삶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혹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은 제사 혹은 주일예배와 같은 의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대부분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드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식 자체에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문화적 경험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주일예배의식 자체에 방점을 두기 쉽습니다.  따라서 예배의식 자체는 지극히 엄숙하고 거룩해 보이는데 반하여 예배의식이 끝나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면 바로 딴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살아가기 쉽습니다.

로마교회의 성도들 역시 예수님을 믿기 전에 로마의 주신인 주피터를 숭배하였으므로 예배의식 혹은 제사의식에 익숙한 나머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예배의식 자체에 중점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의식으로 드리는 예배는 물론 성도의 삶 자체가 예배이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즉 삶의 현장에서 예배자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주시는 권면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이를 쉽게 풀어보면, 너희 삶을 하나님이 받으실만 한(acceptable) 거룩한 산 제사(living sacrifice)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합당한(proper) 예배니라. 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창세기 부터 구약 성경 전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제사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절기마다 죄지을 때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한도 끝도 없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모든 제사에는 양이나 염소와 같은 동물을 죽여서 피와 함께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 규정이 매우 엄격해서 자칫 잘못하면 죽음을 당하는 두려운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이후에는 죽은 제물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성령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했습니다.  여기에서 너희 몸이란 우리의 육체 곧 몸뚱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뜻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우리의 인생 자체를 뜻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죽은 제물을 끝없이 드렸으나 이제는 그런 죽은 제물이 필요 없으므로 우리의 인생을 산채로, 바쳐드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 받은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값으로 사신 것이기에 우리의 몸은 에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는 의식으로서 드리는 주일예배 뿐 아니라 우리가 처한 모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 곧 세상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죽음의 저주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이 드리는 제사는 생명의 제사입니다. 살아있는 것이고 생명을 누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산채로 드려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기쁨과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악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분리해 내셔서 구원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믿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라히라.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 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출 5:1-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막상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의 불신자들이 행하던 세상 풍속의 본받았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바알, 아세라 같은 우상을 섬기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 좋아 보이고 부러웠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이제는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는데 도리어 이방인의 풍속을 따라갔습니다. 이방인에게 영향을 주기는커녕 그들을 본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함으로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마시게 하신 영광의 하나님을 우상의 차원으로 추락시켰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누리는 풍요로운 듯 하나 더러운 타락의 문화에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배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을 시켜서 처참하고도 철저하게 멸망시켜 버리셨습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자들이기 때문에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의 사람들과 같이 살고자 하는 유혹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로마성도들에게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에서 변화는 “transform” 이라는 단어로서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마치 맹물이 포도주로 변화하는 것과 같이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인 변화를 뜻합니다. 마음의 변화 곧 인생관, 가치관, 물질관, 세계관이 자기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바뀔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운명을 결정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위 환경을 보면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해석합니다. 동물을 들여다 보면 자신이 동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풍속을 보면 그 영향을 받아 그것을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다는 것은 우리의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던 삶에서 예수님의 관점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삶으로 옮겨 간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 즉 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예수님을 본 받아 마음의 변화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Transform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본을 받아 세상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소리가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그 분부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으면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고 행하는 능력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두신 목적을 가장 잘 순종하고 행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성경말씀과 성령님이시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함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서 하나님이 기버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서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이 세상의 지혜로 재해석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이스라엘이 실패한 혼합주의적 예배라는 저주 받은 짓입니다. .

마지막으로 4절부터 8절까지는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우리가 한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 12:15)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지체로서 영원한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이루어 주신 한몸입니다.  주일예배는 물론 우리가 한 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예배이고, 또한 우리 각자가 세상에 흩어져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위해서도 서로 연계하며 격려하며 기도하며 주님께 영광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을 때 당시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미친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폄훼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이번 기회에 우리 자신이 온전히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아벨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제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는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다시금 진솔하게 돌아볼 때입니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으로서 합당한 예배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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