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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0. 주일설교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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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손종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7-30 11:22 조회 Read356회 댓글 Reply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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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 목: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아내기 How to survive in the cursed world
ㅇ 설교자 : 이 아브라함 목사
ㅇ 본 문: 창세기 3:17-21

창세기 3:17-21 (개역개정)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로마서 8:22 (개역개정)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창세기 2:16-17 (개역개정)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6 (개역개정)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7:13 (개역개정)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시편 119:11 (개역개정)

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사무엘하 16:11-12 (개역개정)

16: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고린도후서 11:19 (개역개정)

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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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3년 7월 30일        창세기 3:17-21    “저주 받은 세상 살아내기”
“How to survive in the cursed world”
 
며칠 전 한국에서 33세된 젊은이가 흉기로 길 가던 생면부지의 행인 몇 사람을 가격해서 그 중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등을 찔리는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진정 날벼락 같은 일이지요. 그는 자신이 불행해서 남도 불행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벌렸다고 말했답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이미 해를 넘기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잘 못을 따지기 전에 전쟁으로 인한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매일 같이 수많은 아까운 목숨들이 아무 의미 없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아버지이며, 남편이며, 형제이며, 친구일 것입니다. 특히 러시아 군대에는 세계 2차 대전 때에 악명을 떨쳤던 독전대라는 것이 있는데, 그들은 후퇴하는 자신들의 아군을 사살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 못됩니다.

지금 이 시간 전세계에서 굶주리는 인구가 8억명이라고 하는데, 인간들은 사상, 이념, 종교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죽고 죽이는 전쟁이 끊이지 않으며, 수많은 종류의 끔찍한 범죄, 현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각종 질병들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는 지난 주간에 LA에 가서 오랜 만에 장애인선교 단체를 방문하고 말씀을 전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장애우들은 뇌성마비, Stroke, 교통사고, 범죄 피해자 등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자신도 왼쪽 눈이 3분의 2가 안 보이고 왼쪽 귀도 먹통이 된 장애인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인생은 누구나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는 선천적인 장애인인데 정상인줄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히 9:27) 는 말씀이 이를 증명합니다.

우리는 지금 아담의 죄로 인해서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창세기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가 그 소산을 먹으리라.

- 땅이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고…
저주 받은 땅은 가시나무와 엉겅퀴와 같은 원하지 않은 잡초들과 온갖 해충과 야생 동물의 세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먹고 먹히는 생존 투쟁과 천재지변과 각종 질병과…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8:22에서“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라고 기록했습니다. 피조의 세계도 저주를 받아 신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인간이 사는 사회의 저주받은 모양은 이루다 말할 수 없으며 이런 세상에서 종신토록 수고하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즉 죽는 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운명이며 실존입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17절을 보면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나 하나님이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의 실과를 먹은 것”이 원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아내의 말 즉 인간의 말(원리)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죄”이며, 그 죄의 대가로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간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장 알맞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를 거기 두시고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에덴 동산에 사는 아담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에덴 동산은 환경적으로 보기에 좋고 먹기에 좋은 과일로 가득하고 금과 보석이 풍부하고 강의 발원지로서 비옥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동산의 중심은 선악과의 계명입니다. 선악과는, “아담아, 나는 너를 창조한 네 하나님이다.” 라는 주권적 선포입니다. 따라서 이계명은 아담에게는 죽고사는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목숨처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실패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삶에서 눈을 돌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상대적인 아내의 말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약속입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그 땅에 흉년이 들자 아브라함은 환경을 바라보고 굶어 죽을 것 같으니까 양식이 풍부한 애급으로 가버렸습니다. 흉년이 든 환경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셔 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 승리 자체에 도취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크게 나누면 다음의 두가지 유형이 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산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믿는 자들, 하나님 중심
- 사람의 말에 의거해서 산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불신자들, 인간 중심.

“저주받은 세상 살아내기”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세상에서 우리는 잘 살아보겠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땀 흘리며 애쓰고 있습니다만, 잠시 삶의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면, 결국 죽음으로 끝나버릴 인생을 이런 세상에서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참 고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역사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합당할까? 에 대해서 고민하고 추구하고 가장 좋은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로는 별다는 길이 없이 다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 뿐입니다. 이것은 이 저주받은 세상과 타협하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이 숙명처럼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극적으로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생명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요 3:16)

예수님은 아담이 불순종으로 저주받은 세상을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서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 저주 받은 세상에서 살아내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아담의 죄로 인하여 저주 받은 세상으로 내 몰린 죄인이 다시 에덴과 같은 삶으로 회복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dl 복음, 곧 Good news의 핵심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

세상 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향하여 넓은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길은 가기가 쉬워 보입니다. 자기 중심대로, 인간이 원하는 대로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곧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이 저주받은 세상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아내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공적인 인생을 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윗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 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119:11)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의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고백이며 그의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와 동행하시며 그를 축복하시고 영광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둔 다윗은 자신에게 당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때 다윗은 그를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습니다. 원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재해석해 보니 자기가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었지요. 그 원수가 전쟁에서 죽었을 때 다윗은 슬퍼 통곡하였습니다. 스스로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렸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여 도피하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참담한 때에 시므이라는 사울의 신하가 분풀이 하듯이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가거라 가거라 비루한 자여 … 다윗을 보필하던 장군이 시므이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다윗은 가만두라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6:11-12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아담은 선악과의 계명을 하나님께 받았지만 그것을 인간적으로 해석했던 것 같습니다. 사단이 그를 유혹 했을 때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느낀 나마저 서슴지 않고 따 먹은 것을 볼 때 그렇습니다. 아담은 선악과의 계명을 위해서 고민한 흔적조차 없는 것을 보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최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도처에서 넘치 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도처에서 마구 훼손되고 남용되고 버려지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말로 탈바꿈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마음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말 즉 육체의 욕구대로 살게 된다. 인생이 망가지는 첩경이다.

우리는 대개 사람의 말은 철저히 기억하고 마음에 두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소홀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도 바울은 고후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 구나,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 도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따지고 들면서 사람의 말은 잘 받아들인다 한탄했다. 

성경말씀은 잘 듣지 않으면서 youtube 이야기나 신문에 난 검증되지 않은 소문은 확신하지 않는가? 왜, 자기 생각과 같다는 이유 때문이다. 결국 자기가 기준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히4:12)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면 그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주 받은 이 세상을 살아내는데 우리의 길을 바로 인도해주는 길잡이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이란 낙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선악과의 계명이 있습니다. 이 계명이 아담을 에덴에 살게 하는 열쇠입니다. 그 계명을 버렸을 때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에덴을 잃어 버렸습니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아름다운 낙원의 삶 만을 가지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문제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선악과의 계명이 없는 에덴은 결코 낙원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인생,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은 인생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LA에 갔을 때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얼마전에 아들을 결혼을 시켰다기에 잘 살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아들이 좋은 job을 가지고 있고, 어떤 집에 살면서 잘 나가고 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앙생활은 잘 하고 있는가 물었더니, 잘 못해요. 며느리가 않 믿는 집안 애라서… 라고 말끝을 흐리더군요. 참으로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분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큼 부유한 사람이었는데, 시종일관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서 안타깝게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담처럼 살고 있지 않는가 생각이 듭니다.
선악과를 중심으로 사는가 환경을 중심으로 사는가?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며 좁은 길을 따라 감으로써 이 저주받은 세상에서도 에덴과 같은 천국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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