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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주일설교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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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손종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9-17 11:08 조회 Read242회 댓글 Reply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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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 목: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ㅇ 설교자 : 이 아브라함 목사
ㅇ 본 문: 요한복음 12:24-27

요한복음 12:24-27 (개역개정)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로마서 12:1-2 (개역개정)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갈라디아서 2:20 (개역개정)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데살로니가전서 2:19-20 (개역개정)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로마서 6:3-5 (개역개정)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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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3년 9월 17일            요한복음 12:24-27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If a kernel of whea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이것은 보서턴에 있는 저의 어머님의 묘비에 새긴 성경구절입니다. 저의 어머님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이시며, 전통적인 한국 가정에서 아내와 십남매의 어머니로서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다가 62세가 되시던 해에 예수님을 믿으시고 1978년 3월에 저의 아내와 한 날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후 저의 아버지께서 주님 나라고 가시고 나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시고 65세 에 저의 여동생 내외의 목회사역에 참여하셨습니다. 그 떄로부터 30년간 저의 어머님께서 하신 일이라 고는 교회를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국밥을 챙겨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성함이 이호례씨 이었으므로 학생들은 “호례 국밥” 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호례국밥을 먹으면서 신앙생활을 한 수많은 학생들 가운데 지난 40년간 약 300명이 목회자가 배출되어 현재 미국 여러 곳에서 목회를 하며 한국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십남매의 어머니로서 말년을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처럼 살겠다고 결단하고 자신이 죽은 결과 맺혀진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진리를 가르치실 때 아주 이해하기가 쉬운 예화를 주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양을 키우거나 농사를 지었으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 한 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4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심기면 그 한 알 자체는 죽지만 그 후에는 그와 똑 같은 밀알이 많이 맺히는 것을 우리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을 봉지에 싸 두거나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 놓으면 한 알 그대로 있다가 결국은 말라 죽거나 썩어버리겠지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자기의 생명을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의 봉지에 싸서 자기의 생각대로 살면 결국 무의미하게 멸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삶의 내용이 어떤 것이건 결국 그렇게 소멸할 것입니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유명인이든, 성공한 사람이든, 실패한 이름 없는 사람이든, 노숙자든, 모두 다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기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자기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포기하고(forsake), 하나님 중심의 삶을 선택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렇게 살았습니다. 자기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다 내버리고 속세를 떠나서 은둔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따라 사는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라 나섰지만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생업을 가지고,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하고…. 다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을 때 과거의 그는 죽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알의 밀알처럼 가나안 땅에 떨어졌더니, 결국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는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후손 가운데서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 자신의 육신의 생명을 사랑하여 자기 중심대로 고향 땅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그는 하나의 자연인으로 무의미한 인생을 힘들게 살다가 결국은 소멸했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공부했습니다만 노아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노아 라는 사람도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며 자기가 꿈꾸던 인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방주를 지어서 홍수심판에서 구원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중심의 삶을 고집했다면 그는 제멋대로 살다가 결국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대한 방주를 만드는데 인생을 바치기로 결단했습니다. 노아는 그 순간 세상을 향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의 삶은 방주 만드는데 all in 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는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한 알의 밀알로써 온 지구상에 인류를 퍼뜨리는 열매를 남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6절)

예수님의 생애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example 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지금부터 2000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농부가 밀알을 땅에 심듯, 지금부터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 베들레헴에 예수님을 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떨어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시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열매가 맺혀졌고, 지금도 맺혀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맺힐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중 하나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죽기를 거절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한 자연인의 모습으로 무의미한 인생으로 소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친히 거룩한 모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고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이와 같이 예수님도 고민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셨지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활로 영원히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삶을 따릅니까?
우리도 한 알의 밀로 이 땅에 뿌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요 내 부모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계획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하나하나를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듯이 이 땅에 뿌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란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것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바울사도은 이러한 삶을 다음과 같이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즉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관과 삶의 내용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나의 인생을 산 제물로 바쳐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예배입니다.

우선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일까?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는 어부이었는데 예수님을 따라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마태는 본래 세리장으로서 부유한 사람이었으나 예수님께 인생을 드렸습니다.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종교적으로 학문적으로 야심 찬 사람으로서 세상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것으로 생업을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바울은 세상을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바울사도와 동역하던 사람들이 다 이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다 목회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며 살든지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가의 여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거기를 중심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재 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에는 어려움과 희생이 따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지요. (눅 9:23)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괴롭고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공연히 헛된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교회에는 이상한 풍조가 침투해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 희생이 없는 제자의 삶, 세상 것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 천국의 영생은 뒤로 미뤄두는 오염된 복음,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 배교적인 신앙생활 등등 …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새겨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지금 부터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서 오셨다는 당신의 사명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리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이 때에 여기에 왔습니까?
지금 여러분 각자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여러분이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귀히 여기실까요?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 시대에 이 땅에 왔는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에 저희 부부는 사역에 투신했습니다. 그로부터 42년이 되었네요.
 
이제 저희들의 사역의 한 단원을 마치면서 감사하고, 영광스럽고, 가슴 뿌듯한 것은 나와 같이 무익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진정 귀중한 사역에 투신할 수 있었고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저희들은 목회사역에 헌신할 때 세상에서는 죽을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이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미련 없이 도전한 사역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물질로, 명예로, 자존심으로, 야심으로, 인간적인 모든 면에서 죽었습니다. 지극히 부족하고, 무익한, 종들이지만 한 알의 밀알로서 죽었을 때 많은 열매가 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희들을 통해서 구원받은 많은 영혼들과 교회들이 그 열매입니다. 미국 내에 5개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중국에 가정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나이에 아직도 여러분과 함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섭리로 이미 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내가 원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우리를 뿌리셨습니다.
-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래도 있다가 멸망할 것이고,
- 세상을 대하여 죽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신 바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 역시 우리에게 example이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것이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이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반역의 길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지 않고는 결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그래했습니다. 

저는 철이 덜 들어서인지 제가 늙었다는 것을 최근에 들어서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아내에게 내가 이제는 정말 은퇴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야 말로 정말 수고 많았어요. 당신이 한 알의 밀이 되어 죽었으니까 내가 목회자로 살 수 있었고, 목회 사역이 가능했고 교회가 세워졌지요. 
돌아보면 사실 저의 아내는 자신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 크리라고 믿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도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수고 많았어요. 성격이 그렇게 양순하지도 않은 사람이 죽느라고 애 많이 썼어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땅에 떨어진 밀알과 같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우리 자신이 살아 남아 보려고 아무리 기를 써봤자 그렇고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출세, 성공, 그런 것들은 한 낱 꿈과 같은 것일 뿐 입니다.

그동안 몇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지난 번 한국 방문 때에 60년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기들을 보면서 그것을 실감했습니다. 무엇을 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희미한 기억 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80대 노인이 되니 걸음도 시원치 않고 희망도 없고 아무개는 이렇게 아프고 또 아무개는 죽고, 또 아무개는 오늘 내일 하고….대부분 지나간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할 뿐 미래에 대한 소망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세상을 향하여 죽은 저는 아직도 소망이 넘칩니다.
이제 새해 1월이 되면 만 80세가 되는데, 남은 20년을 어떻게 살까 구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끝 날에 이를 주님의 나라를 그려보며, 주님의 품에 영원히 안길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 여러분도 잘 아는 유명한 말입니다. 다글라스 맥아더장군이 미국의회에서 행한 은퇴연설의 내용 중 마지막 구절입니다. 노병은 사라져가지만 그의 정신은 계속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모두 사라져갑니다. 그리스도인도 죽어서 사라집니다. 사역자라고 해서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열매로 인해서 사역은 계속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영원히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살전 2:19-20)

천국에서도 영원히 기억되고 칭찬받을 인생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진정 무익하기 짝이 없는 제가 여러분과 함께 교회를 이룰 수 있어서 행복했고 또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장차 주님나라 영광의 처소에 임할 때에도 자랑스럽게 주님께 보고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3)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여러분 한분 한분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고 많은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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